인류 문명의 장구한 세월을 주도해온 농업사회는 이른바 면접사회였다. 땅을 중심으로 협동하여 일해야 생존이 가능했으므로, 자연히 혈연이나 지연으로 가깝게 맺어진 '낯익은'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삶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인간의 그 강렬한 본능적 이기심이나 사사로운 욕망들이 멋대로 돌출되기가 어렵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요구하는 관행과 규범을 성실하게 따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열리면서 전혀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다. 노력만 하면 굳이 땅에 속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였기에, 도시로 몰려든 '이방인'들은 억제되었던 이기심과 욕망들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그러다 보니 '이기심들의 충돌'이 빚어지고,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최소 도덕인 법이 사회계약으로 마련된다. 일종의 교통법규인 법만 성실히 준수하면 마음껏 개인의 욕망을 표출해도 된다. 각자의 이기심을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해 선택한 '욕망의 규제'요 '이기심의 합리화'였다. 어차피 이기심들이 난무할 수 밖에 없는 근대 이후 산업사회는, 사회 운영의 전제로서 법의 성실한 준수와 그 엄정한 집행에 합의한 것이다.
또 다시 훼불 행위가 교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달 경남 산청군 소재 3곳의 사찰의 불상과 탱화, 산신각이 연이어 훼손되었고, 경찰은 사건 현장에 있었던 봉고차의 차적 조회를 통해 용의자를 체포하여 범행을 자백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에 임하는 경찰의 납득하기 어려운 미온적 태도가 불교계를 더욱 불편하게 하고 있다. 명백한 범법 행위를 민감한 종교적 사안이라 하여 흐지부지 처리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가 이번에도 반복된다.
법 집행 주체들의 난처한 입장도 충분히 헤아려진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합리적 종교 열정과 그를 둘러싼 정치, 사회적 지형도의 미묘한 문제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정치적인 배려로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다양한 이익들이 충돌하는 근대 산업사회의 최소 운영 원리에 원칙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 특히 종교적 이기심의 강한 독선과 배타성을 고려한다면, 빈발하는 종교적 범법 행위는 오히려 더욱 엄정하게 법대로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다종교사회이다. 종교 이기심들의 충돌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필요 조건은 엄정한 법 집행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