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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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禪은 몰록 놓아 하나 되는 길
선(禪)은 생명을 밝히고 살리는 법이다. 선은 생각을 버리고 느낌을 살리는 법이다. 지식과 상식은 생각 속에 있고, 과거의 것이다. 선은 느끼는 것이며, 생각 너머에 있다. 지식과 상식으로 선에 접근하지 말라. 생각으로 선을 더듬지 말라. 그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빛을 노래하는 장님들이 너무 많다. 그 목소리가 너무 크고 아름다워(?) 빛을 갈망하는, 빛을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자가 빛으로 왜곡되어지는 안타까운 현실이 실로 염려스럽다. 장님이 어떻게 빛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선은 배우는 것이 아니고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다. 선학(禪學)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선학이다. 선에서도 오직 두 가지는 배워야 한다. 첫째는 선은 배우고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하고, 둘째는 그 동안 연구하여 얻은 모든 지식과 상식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만 배우면 된다. 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배울 것이 없다. 어떤 이는 선의 과정을 연구하여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나, 선의 과정은 처음도 놓아야 하고 마지막도 놓아야 한다.

선은 무아(無我)가 되는 법이다. 내가 있고, 나의 지식이 있고, 나의 생각이 있으면 선은 없다. 선이 있는 곳엔 나도, 나의 알음알이도, 나의 생각도, 나라는 상(相)이 전혀 없다. 무아란 내가 없음이 아니고 내가 있음이다. 개체가 아니고 전체로, 유한함이 아니고 무한함, 영원함으로 있는 것이다. "나는 없으면서 있는 존재다", 이것이 선이다. 이 경지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워서 된단 말인가? 금강경에서도 "모든 것을 다 놓아라"고 거듭 세세하고 간절하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모든 것을 다 놓았을 때 그렇게도 궁금하고, 알고 싶고, 얻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다 해결되는 것이다.

선은 하나가 되는 법이다. '천성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부처임의 말씀은, 하늘 위와 땅 아래에서 부처님이 제일 높다는 말씀이 아니고, 하늘 위와 땅 아래에 오직 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온세계에 나 아닌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이 말씀을 체득하여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불자의 길이요, 선이다.

너와 내가, 원수와 사랑이,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이것과 저것이,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절 하는 자와 절 받는 자가, 생과 사가 '하나'임을 어떻게 설명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물록 놓아서' 스스로 '하나'의 경지를 체험하고 '하나'가 되는 길밖에 없다.

물론 선의 방법론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방법의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선을 자신의 상식 속으로, 자신의 관점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것이다. 도(道)는, 내가 도를 얻는 것이 아니다. 도란 나를 도 속으로 버리는 것이다.

서울을 구경도 못해보고 듣기만 한 사람이 서울 가본 사람보다 서울 이야기를 더 잘 하니까, 서울 안 가본 시골사람들이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많이 모였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 지난 봄에 몇 일간 서울 구경을 하고 온 사람이 가만히 들어보니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많아 "그렇지 않다"고 하니, 서을 안 가본 사람이 더 큰 소리를 치면서 시비가 붙었다. 이 광경을 서울 사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지켜보고 빙긋이 웃는다. 우리 모두 좀 더 겸허함을 갖자.

남영호 대구 이화선원 원장
2000-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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