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열대야보다 더 지겨워 보이는 한국 의약(醫藥)분업 갈등 현장과는 달리 지금 세계 의약계는 환상적인 꿈의 실현을 위해 막 달리기 경주를 시작하고 있다. 인간 유전자 지도의 완성이 그 꿈의 실현을 고무해 주고 있는 것이다. 환상적인 꿈의 내용은 질병과 고통 없는 삶, 수명의 무한연장 등으로, 그야말로 이승의 삶 자체를 천국의 삶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 꿈은 동서양 의술 의약의 시초부터 싹터 있었고 오늘까지의 경이로운 의약발전 역사를 견인해 온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의술 및 의약의 무한발전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죽음과 질병에 맞서기만 하는 인간들의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 보는 일도 의미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의약의 관심은 당연히 인간의 건강에 있다. 따라서 건강을 최대 선(善)으로 삼아 무조건 이를 추구한다. 그래서 어쩌면 건강 중독증이 현대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에 가고 운동을 하고 춤을 추고 단식도 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종교적인 명상이나 불교의 참선수행도 '건강에 좋아' 하고 있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태어남을 고통으로 보는 것은 태어남이 노 병 사, 즉 늙고 병들고 죽는 그 첫 과정이기 때문임을 우리는 배워서 안다. 병들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있는 것이 아닐까. 늙고 죽는 일 역시 마찬가지로 결코 퇴치해야 할 악(惡)만은 아닌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아픔이나 두려움 등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들긴 하지만 그 자체가 질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본다. 정상적인 방어기능으로 더 큰 위험을 경고해 주는 장치라는 것이다. 사람의 기본정서 속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노여움과 슬픔이 있어 조화를 요구한다. 기쁨과 즐거움만으로 과연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노여움과 슬픔을 제거한 인생이 과연 멋질 수만 있을 것인가. 질병과 고통 죽음을 퇴치해야 할 악으로 삼아 발전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현대의학을 걱정스레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징자(언론인,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