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한 것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0세기 말에 이르러서 인류의 최대 화두는 인권이라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과 함께 인류의 생존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많은 진전을 가져왔고, 공산독재 정권이 급격히 붕괴되고 그에 따른 인권 신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개선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선진제국들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앞다투어 법제화하기에 이르렀으며, 세계 130여개 국가가 이미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인간 생명의 존엄을 선언한 상태이다.
사형이란 중죄를 지은 자에 대한 단죄의 방법이긴 하나, 더러는 이념과 사상의 기준에 따른 피치못할 행위도 있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단죄를 목적으로 한 방법이 또 다른 죄를 짓는 행위도 될 수 있다.
사형 존치론자들은 이 제도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야기하여 흉악한 범죄를 억지(抑止)하는 효과를 갖고 있으며, 동일한 흉악범에 의한 다른 사람이 피해자가 되지 않게 하는 예방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폐지론자들은 인간의 생명은 국가가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이것을 종식시킬 권리가 없으며, 사형제도가 종신형제도보다 실제적으로 더 나은 범죄 억지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못한 가설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사회의 사법제도는 완전하지 못하기에 오판의 가능성이 있고 드물게는 사형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회복이 불가능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법의 기준에 맞추어 인간의 생명을 단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연법 사상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문명사에 있어서 소중한 가치를 가지는 인권에 반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불교는 이미 2500년 전 교단 출범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인권선언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개유불성(皆有佛性)사상을 제시해 유정중생은 물론 돌과 바위 같은 무정중생까지도 생명을 가진 절대 평등의 귀중한 존재로 인식해 왔다.
불교가 교리의 핵심으로 내세우는 마음이란 것도 달리 표현하면 '생명'이다. 불교는 생명의 본질을 자유와 창의력으로 보고 개체의 생명 하나하나가 곧 전 우주와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해 그 존엄성과 귀중함을 일깨워 왔다.
불교의 생명사상은 이렇듯 인간은 물론 무정중생의 생명까지를 경외의 대상으로 받들어 모시도록 했다. 반면 세속 현실은 인간 자신을 기만하는 윤리와 도덕을 앞세워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나 고조선의 팔조법금법에서부터 죄를 벌하는 수단의 하나로 사형을 집행해 왔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이제 인류가 과감히 벗어던져야 할 낡은 과구이다. 우주를 뜻하는 인간의 생명이라는 귀중한 가치는 전혀 인위적인 범접이 불가능하고, 절대 어떠한 훼손을 해서도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무위법에 속하는 세계이다. 인간의 죄는 종교적, 심리적으로는 물론 세속적으로도 참회와 용서를 통해 반성하는 삶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위적으로 생명을 처단하는 것은 우주심리를 거스르는 반역이다.
불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오역죄(五逆罪)를 범해도 처절한 참회로써 용서받을 수 있다. 비록 종교적인 차원이 아니더라도 사회 실정법의 교도(敎導) 역시 같은 이념이다. 이미 구미 선진제국에서는 사형제도가 폐지됐고, 전 세계적으로도 폐지되는 추세이다.
하루빨리 이 땅에서도 사형제도가 폐지되어 참회와 용서를 통한 반성과 화해로써 맺힌 것을 풀고, 동체대비 사상에 입각한 불국정토가 구현되기를 고대한다.
법장스님(생명나눔실천회 이사장·수덕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