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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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로운 방생문화를 기대한다
생명 존중의 적극적 발현인 ‘방생’은 불교의 자비 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 의례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이루어진 그 동안의 방생 법회는, 방생의 기본 정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으로 진행되어왔다. ‘생명 살리기’가 아니라 ‘생명 죽이기’라는 비난은 물론, 최악의 종교 상업주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생법회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그렇다고 방생법회의 주체들이 비난의 내용만큼 몰지각하거나 파렴치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다만, 별다른 고민 없이 동기의 순수함이나 행위의 선함만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온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함정이 숨어있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즉, 모든 생명에는 부처의 성품이 깃들어 있다는 불교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종교나 사상보다도 투철한 불교의 평등사상을 몰각하고 인간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본 결과였다.

이는 오늘의 한국불교만의 문제가 아니고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서구문명의 전지구화가 가져온 폐해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방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다만 문제는, 방생이라는 행위가 불교의 절대적 자비정신과 합치하는가 하는 점이다. 부끄럽게도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다. 그 동안 행해진 방생은 다분히 반생명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성을 바탕에 깔고 볼 때, 최근 조계종 총무원이 내놓은 <친환경 방생법회 지침서>는 그간의 폐해를 일거에 해소하지는 못할지라도 방생의 근본정신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다.

특히, 오는 6월 20일에 북한산 도선사에서 열릴 예정인 ‘자연과 생명 살리기 방생행사’는 조계종이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할 때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무조건 박수를 치기에는 미심쩍은 구석도 있다. 환경부가 후원하는 캠페인 성격을 감안하더라도, 한여름에 나무를 심는다거나 특정 조수를 풀어놓는 행위 등은 생명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결여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기 때문이다. 어렵게 이루어진 새로운 방생문화가 자연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건 없는 자비의 실천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200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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