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2001년도부터 연차사업으로 계획한 ‘불교문화재 일제 조사’ 사업 계획이 백지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놓였다. 5억원으로 책정된 예산이 국회의 새해 예산 처리 과정에서 전액 삭감됨으로써 사업 추진의 근거마저 잃게 된 것이다.
현재 불교계가 이 일을 두고 분노 이상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은 예산 즉 돈 배정 문제 때문이 아니다. ‘나라의 일’로 추진되어야 마땅할 사업이 궤도를 이탈했다는 데 있다.
불교의 많은 성보들이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 것도, 그것이 불교계의 것만이 아니라는 국민적 공감의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불교 문화제 일제 조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번 국회의 처리 결과는 무성의나 무관심을 넘어 무지의 결과로 밖에 볼 수 없다.
조계종에서는 자체적 노력만으로 ‘불교문화재 도난 백서’를 발간하는 등 문화제 보호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것은 결코 특정 종교 집단의 자산 관리 행위가 아니었다. 불교 문화재들이 조계종의 것이 아님은 물론 불교도의 것만도 아니질 않는가. 다만 불교 문화재이자 민족 문화의 고갱이인 만큼 정부의 몫까지 떠맡기를 기꺼이 했던 것이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라 할지라도 그것이 지정문화재인 한은 비가 새도 기와 한 장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불편도 감수한다. 그것이 단순한 집이 아님을, 절집의 소유물만이 아님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의 예산 백지화는 문화제 보호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도 정면 배치된다. 좋은 예로, 지난 해 8월 26일에 입법예고되어 현재 국회 본회의에 상정중인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와는 정면으로 부딪친다. 6만 여건에 이르는 사찰의 비지정 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전제되지 않는 한, 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비지정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이 법률은 있으나마나 한 법이 될 것이 뻔하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보호를 한단 말인가.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예비비로라도 불교문화재 조사사업 예산은 확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