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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 너그럽게 살 수 없을까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분노'라는 단어가 많이 눈에 뜨인다. 수돗물이 안나왔다고 분노했다는 시민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비행기가 늦게 도착했다고 분노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유도 없이 분노한 시민이 누구를 해롭게 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분노한 야당의원들이 거리를 쏘다니면서 어쨌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끔찍하게는, 부모가 자신을 홀대했다고 분노해서 토막살인했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도무지 분노의 근원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우리들을 끔찍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루도 성한 날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욕구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방해를 받으면 갈등을 갖는다. 이런 갈등의 표출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려 분노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그 역동적인 원인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모순되게도 사람들은 무한한 욕구의 충족과 더불어 아주 담담한 마음을 갖기를 원한다. 무한정한 욕구의 충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충족에 이르기까지 제동이 걸리는 것이 많다. 불가능한 것을 충족하기를 원하거나 제동이 걸린 욕구는 한결같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도 모순되게 담담함을 기원한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욕구는 결코 한마음 속에 공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쟁을 통해 끝없는 욕구 충족을 원하거나 아니면 담담한 마음 갖기를 원하거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이 아닐지라도 자아의 대타협이 이루어져야 평온해진다. 마음을 비우라고 한 진정한 뜻도 그런 모순을 읽으라는 뜻일 것이다.

욕구들을 무한정 갖고서는 느긋해지기는 어렵다. 담담해지는 과정은 어렵다. 그러나 담담한 경지에 이르면 분노로 얼룩진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있을 것이다. 훌훌 떨쳐버리고 좀 느긋하게 살 수는 없을까. 마음을 비우라는 말씀의 바른 뜻을 바로 새겨 스스로를 실천시키는 용기를 가져보자.

이근후(이화의대 교수, 본지 논설위원)
200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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