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환경이 주는 식량과 에너지를 최대로 이용하여 살아가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좋은 날씨와 풍부한 자연의 해택이 있는 곳에서는 환경 조건에 관한 이용밀도가 낮다. 또한 겨울밤이 긴 북구라파, 그 가운데서도 유별나게 자원이 적은 나라에서는 어떤 조건이라도 적극 이용해야 한다. 가공기술이 정밀해지고 자원을 효율화시키는 과정에서 기계공업이 발달한다.
최근에는 혹한 속에서도 쾌적한 주거조건으로 겨울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방안에서는 정비된 난방의 혜택으로 얇은 내의만 입고 지낼 수도 있다. 이런 생활에 길들어진 어린이는 마치 온실속의 식물처럼 전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자라게 된 것이다. 외출이라도 할 때는 따뜻한 옷으로 몇 겹씩 감싼다. 그러나 두터운 옷보다 추위를 즐기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유치원생은 일부러 반바지 차림으로 겨울을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추위에 있어서 한국은 일본보다 훨씬 심한 것이 사실이지만 과보호를 자식사랑으로 여기는 우리부모에게도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추위와 함께 경기 한파가 우리의 체감 온도를 더 낮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첫겨울이 따뜻해서인지 소한 이후 연속으로 이어지는 혹한은 유별나게 심하게 느껴진다. IMF 관리 체제이후 잠깐 반짝이던 경제도 금년 초겨울 기후와 같은 양상을 보이면서 이번 경제 한파를 더욱더 피부에 느끼게 하고 있다. "춥다 춥다 하기에 더 춥게 느낀다." 경기의 추위 또한 마찬가지로 불경기이니 경기침체니 아우성이 추위의 고통을 가중한다. 일부러라도 내한 훈련도 하는데 이 경기한파도 적극적으로 도전 해볼만한 일인 것이다.
봄을 앞두고 산토끼 중 북녘에서 눈에 묻혀 지내는 것은 살아남아도 눈 녹은 남녘에 있는 것은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말이 있다. 지금은 눈에 묻혀 있어도 건너편 산의 남녘에 싹이 트기 시작한 풀을 보고 지내는 자는 며칠만 있으면 맛있는 풀이 금방 자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주변의 눈이 녹아 싹이 트기 시작한 무렵인데도 변변히 먹을 것이 없는 북 건너편의 눈을 보는 산토끼는 봄이 멀다하여 견디지 못하고 죽는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