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사‘범종각’…97세때 썼지만 힘차
◇합천 해인사 ‘경학원’ 편액
◇청도 용천사 ‘범종각’ 편액.
환경 효동(幻鏡 曉東·1887~1983)은 경상남도 합천 출생으로, 13세 되던 1899년에 해인사 백련암(白蓮庵)에서 연응(蓮應)을 은사로 출가하여, 1902년에 사미계, 1908년에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그는 주로 가야산에 머물며 선리 참구와 불교 포교에 힘썼으며, 해인사 교무와 주지를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환경은 1919년 용성(龍城), 만해(萬海) 등을 만나 탑골공원에서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1929년 홍제암(弘濟庵)에 머물 당시엔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내용의 시조 ‘백로가’를 지어, 유포한 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환경은 어려서부터 사서(四書)를 배워 한학에 조예가 깊었고, 평생 서도에 정진하며 붓을 놓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로부터 꿈에 붓을 얻고 뜻한 바 있어 글씨 쓰는 것을 포교의 일환으로 삼았다고 한다. 환경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준건한 행서를 잘 썼는데, 합천 해인사 <경학원>, <선불장>, <수월문>, <금선암>, <죽림선원>, 청도 용천사 <범종각>, 거창 송계사 <극락보전>, <육화문>, <덕유산송계사> 편액 등이 대표적이다. 합천 해인사 <경학원> 편액에는 ‘해방후이년 병술지추 사문 환경(解放後二年 丙戌之秋 沙門 幻鏡)’이라는 관지가 있다. 지금은 승가대학 도서관으로 쓰이는 경학원은 본래 왕실의 안녕을 비는 ‘경홍전’이었던 것을 1946년 해인사 주지를 맡은 환경이 전각의 명칭과 편액을 바꾼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호방하게 써 내린 선필 행서이며, 관지에 ‘해방후이년’이라 써넣은 것에서 독립에 대한 그의 남다른 감회를 엿볼 수 있다.
청도 용천사 <범종각> 편액에는 ‘구십칠세 효동 임환경(九十七歲 曉東 林幻鏡)’이라는 관지가 있다. 이 편액은 환경이 97세로 입적하던 해인 1983년 절에 종각을 새로 건립하면서 쓴 것이다. 함께 걸려있는 범종각 주련도 그의 글씨인데, 환경의 글씨는 사찰의 편액보다는 주련으로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편액의 글씨는 노경의 글씨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젊은이 글씨 못지 않은 기상을 지녔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