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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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편액을 찾아서】<31> 남전의 해인사·선석사 편액
해인사 ‘구광루’…6개 쪽판 이어 음양각
선석사 ‘정법료’…소박하고 단아한 서체

◇합천 해인사 ‘구광루’ 편액.

◇성주 선석사 ‘정법료’ 편액.

남전 한규(南泉 光彦·1868~1936)는 합천 출생으로 1885년 18세 되던 해에 해인사를 참례하고 문득 발심하여, 신해(信海)를 은사로 득도하고, 완허(玩虛)의 법을 이었다. 이후 그는 청암사 혼원(混元), 동화사 회응(晦應) 등으로부터 교학을 배웠고, 범어사, 오대산 상원사, 해인사, 통도사 등에서 선리(禪理)를 참구하였으며, 1908년 해인사 제산(霽山)으로부터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또한 남전은 동래포교소 포교사, 범어사 중앙포교당 포교사, 해인사 총섭, 직지사 조실 등을 지내며 포교와 수행에 진력하였고, 1922년에는 도봉(道峰), 석두(石頭), 성월(惺月) 등과 함께 선학원을 설립, 선풍 진작에 노력하였다.

남전은 어려서 12년 동안 인동(仁東) 서송재(徐松齋)의 문하에서 한학을 배웠고, 시문과 글씨 모두에 뛰어 났다고 한다. 남전의 글씨는 특별히 서법에 안주하지 않은 선필이면서도 승려의 글씨라기보다는 의연한 선비의 글씨를 떠올리게 한다. 합천 해인사 <구광루>, 성주 선석사 <정법료> 편액 등이 그의 대표적인 필적이며, 이외에 해인사 법보전 중앙 통로 좌우에 걸린 주련도 그의 글씨이다.

합천 해인사 <구광루> 편액은 세로 6개의 쪽판을 이어 붙이고 그 위에 글씨를 음양각으로 새긴,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는 것이다. 이 편액은 도서나 관지는 없으나 남전의 강건(剛健)한 필선의 계행(楷行)으로, 1908년 해인사 총섭이 되어 절을 정비하면서 써서 건 것이 아닌가 싶다. 편액의 글씨는 조심스럽게 쓴 여타의 대자필(大字筆)과 달리, 일필로 휘쇄(揮灑)한 듯 경쾌하며, 호방하다.

성주 선석사 요사에 걸려 있는 <정법료> 편액은 변죽 없이 액판의 사방을 둥글게 귀를 죽인 민판 형식을 취하고 있다. 편액의 형태나 그 단청은 편액이 걸릴 건물의 격에 맞추어 하는 것이 상례로, 이 편액은 한적한 승방을 연상케하는 소박한 것이다. 글씨를 쓴 인연은 알 수 없으나, 액판 좌측에 조그맣게 “남전(南泉)”이라는 관지가 있으며, 청경(淸勁)한 선질과 단아한 서미를 지닌 글씨이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

200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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