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응정사…민판에 새긴 노건한 선필
◇부산 범어사 <금강계단>편액.
◇부산 범어사 <원응정사>편액.
동산 혜일(東山 慧日, 1890~1965)은 충북 단양 출생으로 1913년 동래 범어사에서 용성(龍城)을 은사로 득도하여, 평남 맹산의 우두암(牛頭庵)에서 한암(漢岩)에게 사교과를 수학했고, 1917년 범어사 강원의 영명(永明)으로부터 대교과를 배웠으며, 1923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성월(惺月)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그는 금강산 마하연사, 범어사 등의 조실을 지냈으며, 1954년에는 비구 종단의 초대 종정에 추대되기도 하였다.
동산은 어려서부터 향숙에 입학하여 한학과 서법을 배웠으며, 이어 보통학교와 중동중학교를 마치고, 1912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동산은 서법에 매인 글씨를 쓰지는 않았지만, 간혹 당(唐) 유공권(柳公權)의 서미가 엿보이는 단아한 글씨를 즐겨 썼다. 그가 사찰에 남긴 글씨로는 부산 범어사 <금강계단>, <원응정사> 편액 등이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범어사 대웅전, 천왕문, 불이문에 걸린 주련이 그의 필적이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 아래쪽의 보제루 후면 <보제루> 편액 아래에 걸린 <금강계단> 편액에는 ‘계묘초하 석동산(癸卯初夏 釋東山)’이라는 관지와 ‘석동산인(釋東山印)’이라는 도서가 있다. 이 편액은 동산이 입적하기 두 해 전인 1963년에 쓴 글씨로, 위쪽에 걸린 <보제루> 편액이 정면 5칸의 규모와 어울리는 매우 큰 것이어서 작은 편액이 상대적으로 더욱 왜소해 보인다. 편액의 글씨는 당(唐) 유공권(柳公權)의 서미가 엿보이는 해서로 군더더기를 다 떨어내고 근골(筋骨)만 남긴 청경(淸勁)한 글씨이다.
부산 범어사 보제루 우측에 자리한 원응정사는 1925년에 성월이 중건한 건물로 강원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요당의 앞쪽에 걸린 <원응정사> 편액은 서법(書法)을 뛰어넘은 동산의 노건(老健)한 선필로 도서나 관지는 따로 없다. 편액의 형태는 액판을 직사각형으로 파내고 글씨를 양각으로 새긴 민판 형태인데, 후에 변죽을 덧붙인 것으로 테두리의 구획이 중복되어 어색한 느낌이 든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