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잃고 원망으로 사는 나에게
어머니는 ‘천수경’ 쥐어 주셨지만…
붉게 물들어 있는 노을에 잠시 취해 보았습니다. 지쳐버린 하루해는 어느덧 눈앞에 보이지 않고 무심한 하늘에는 낙조의 잔영으로 붉은 노을이 세상을 가득 물들이고 있습니다.
하루해가 바뀌고 바람이 달라지는 시간 속에 살랑 살랑 나뭇잎을 건드리는 바람결처럼 마음 또한 가볍습니다.
간혹 바람결에 묻어온 아이들 냄새가 두 눈가에 축축이 묻어납니다. 간간히 작은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던 새들도 몰려오는 어둠의 긴 그림자를 피해 나뭇잎 사이로 몸을 숨깁니다. 화려한 노을 속에 지쳐가고 있는 하루를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가끔 수십 척 높이의 하얀 담장 너머로 세상을 가르며 들려오는 자동차 굉음 소리가 쉬지도 않고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듯합니다. 타의로 조용히 가라앉은 제 주변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 새삼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내 허무한 삶에 수없이 원망도 하였습니다. 원망이 쌓이고 쌓여 제 가슴 속에 썩어 들어갔지만 그 또한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점점 무디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이곳에 갇혀 이렇게 후회하며 가슴에 하얀 번호를 달고 영어의 몸으로 있어야 하는지, 아직도 깊고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의 두꺼운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 속을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작은 간이역이라도 보일 것도 같은데 작은 바늘 끝만큼의 빛도 없이 아직도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입니다.
텅 비어 있는 내 마음의 밭에서 하루 종일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부짖고 있는지 저 스스로에게 많이 물어보아야 했습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을 뒤로 하고 처음으로 푸른 수의를 입던 날, 마치 세상을 원망이라도 하는 듯 가슴이 무거웠던 저를 대신해 하늘에는 참 많은 비가 쉬지도 않고 뿌려 주었습니다. 제 답답한 마음속에도 그 어두컴컴한 터널 한 가운데에서도 하염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늦은 가을비라 하기에 너무도 많이 쏟아져 내리던 그 비는 늙으신 어머니의 허망한 눈물처럼 그렇게 보였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마음을 가진 저를 알고 있다는 듯 내리는 빗방울에 저는 더욱 서글프게 가슴으로 소리 없이 울어야 했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에 손을 담근다고 해서 그 강물이 멈추지 않듯이 어느덧 영어의 몸으로 생활한지 두 해가 쉬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가슴 깊숙이 파묻혀 있는 내 안의 우물 속 부끄러운 얼굴을 한참을 비추어 봤습니다. 단 한 번 주어진 내 삶이란 고귀한 기회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참으로 부끄러운 얼굴을 그저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부정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이들이 가진 것 같은 희망과 내일이 저에게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암담한 오늘만 있는 줄 알고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며 자포자기했습니다. 그때 늙으신 어머니로부터 열심히 읽으라는 당부와 함께 <천수경>을 받았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있었기에 저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천수경>을 구석진 곳으로 내팽겨 버렸습니다. 내 허망한 삶과 세상을 두려워하며 모든 것을 원망만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포기와 원망 속에 지쳐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힘겨운 바람을 등에 업고 어깨가 축 쳐진 가녀린 모습으로 찾아온 어머니를 이 세상 가장 부끄러운 이곳에서 만나야 했습니다.
투명한 아크릴을 사이에 두고 저는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갈기갈기 찢겨진 논두렁처럼 깊이 파인 주름 속에서 세월에 지쳐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전 말없이 보아야 했습니다.
이미 삶도 포기해 버리고 원망 속에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머니가 두 손에 꼭 쥐어주던 <천수경>마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저였습니다. 수많은 세월 한 많은 사연을 알고나 있는 듯 어머니와 제 사이에 놓인 오래된 투명아크릴은 점점 뿌옇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 하는 그 허망한 눈물을 전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허망한 눈물과 그 눈물의 참 뜻을….
아파도 아파하지 않고 힘들어도 누워있지 않으며 오직 부처님의 힘으로 남은 삶을 지탱하고 있다며 소리 없이 울며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 또한 말없이 가슴으로 울어야 했습니다.
마음 속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구석에 내팽겨져 뒹굴고 있는 <천수경>을 꺼내 다시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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