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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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일등, 참회의 등불 (하)-이종구 경남 마산시
한 해가 저물어 간다는 아쉬움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는 희망이 교차된 들뜬 분위기 탓인지, 저는 적지 않은 양의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의 고삐는 차츰 느슨해져갔고 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제 행동을 지배했습니다.
내가 살인자가 되다니…. 술을 깨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제 눈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나도 믿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가혹한 운명의 저주가 내린 것인지, 하루아침에 살인자의 아내와 자식이 되어버린 처자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정신은 혼미해질 따름이었습니다. 아내와 부모 형제들이 경찰서 유치장으로 황급히 달려왔지만 너무나도 큰 충격 탓에 저는 가족과의 만남조차 거부하였습니다.
그 후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 속에서 치러야 했던 세 번의 재판을 통해 무기징역이 내려졌습니다. 구치소에서 보낸 일 년 남짓한 세월은 저에게는 잠 못 이루는 세월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와 이혼하고 두 아이는 할머니에게 맡겨진 채 고아와 다를 바 없어졌다는 사실은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면회를 오실 때마다 밖의 일은 걱정 말고 몸 건강히 지내라는 말씀과 함께 제 잘못을 진심으로 부처님 앞에 참회하라는 말씀을 되풀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당부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뵐 때마다 믿었던 아내가 저를 등지고 떠난 사실이 떠올라 제 운명에 대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무기징역형이 확정되고 교도소로 이송된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불교 집회를 다녔습니다. 그때만 해도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떡이나 빵 같은 공양물을 받아올 욕심에 집회를 다녔을 뿐 부처님의 가르침에 진실로 다가설 계기를 갖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불현듯 눈을 뜨게 된 것은 사소한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였습니다.
모포건조날이었습니다. 평소 성격이 깔끔한 편이어서 이부자리를 깨끗이 사용해 왔는데도 햇볕에 모포를 말렸다가 털어내자 뜻밖에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저의 마음속에는 한줄기 섬광이 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지난 날 사회에 있을 때 나름대로 올바르고 열심히 살아왔다 해도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마음의 먼지까지는 털어 내지 못했고, 결국 그것이 저를 오늘의 이 현실로 밀어 넣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작은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저는 교무과에 상담을 해 불교교실에서 본격적인 수양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신임 수용자로서 당연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남들이 꺼려하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것으로 하심을 실천했습니다.
찬불가 반주를 위한 전자오르간 연습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 음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저였기에 사실상 독학으로 배워야 하는 오르간 반주가 쉽지는 않았지만 찬불가 보급을 통해 한 사람의 동료라도 더 부처님의 품안으로 다가서게 하리라는 일념으로 노력한 결과 연습을 시작한지 12년 만에 불교 법회와 찬불가 반주를 담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 손에 희생된 가련한 영가를 위하여 매일 무상게, <아미타경> <금강경> 독송 및 백팔 배 참회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마음의 먼지는 집착에 의해 쌓이게 됩니다. <금강경>에서는 집착하는 마음에 대한 치료법으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가르침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마음을 갖는 것이야말로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비결인 것입니다.
옛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인도에 한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해 가진 것이 없어 부처님께 아무것도 공양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던 여인은 구걸을 통해 얻은 한 닢의 동전으로 적은 양의 기름을 사서 부처님을 위해 등불을 밝혔습니다. 놀랍게도 다른 등은 밤새 기름이 다 타서 새벽 무렵에는 다 꺼져버렸지만, 가난한 여인이 밝힌 등불은 꺼질 줄을 모르고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저이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만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려는 저의 의지는 그 옛날 가난한 인도의 여인이 한 닢의 동전과 바꾼 적은 양의 기름과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으로 밝혀든 참회의 등불은 날이 새고 바람이 불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을 굳게 믿으며 그 등불로 인해 보다 많은 동료들이 저와 함께 부처님의 품안에 귀의할 수 있게 되기를 합장 발원합니다. (끝)
2008-02-15 오후 11: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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