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간밤의 꿈에 뵈었습니다. 까만 밤하늘의 별들도 조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고향에 가지 못한 겨울제비 같은 몰골로 낡은 사립문 앞으로 서성거릴 때 낙엽을 울리는 바람 소리처럼 아니 들리듯 들려오는 어머님의 음성. 눈물 젖은 애절한 기도소리가 들리었습니다.
삼십년 전 여윈잠 뒤척이며 첫 새벽 비몽사몽간에 듣던 그 애절하고도 간절한 기도 소리를…. 어머님, 어젯밤에는 꿈속에서 들었습니다. 끊일 듯 이어지는 간절한 기도소리 따라 허물어진 담장을 돌아 기도소리 가까운 담장 뒤에 숨어서 장독대에 꿇어앉으신 작아진 어머님의 모습을 뵈었습니다. 개다리소반 위 정화수에 비춰진 별빛보다 더 파리한 처연토록 야윈 얼굴에 흰 머리카락.
“남들 눈에 한 송이 꽃이 되게 하여주시고, 부디 세상의 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손이 닳도록 빌고 비시던 옛날 그 지극한 정성의 이령수 소리.
“가엾은 제 자식에게 십오 척 높은 담장을 날아 넘을 수 있게 잠자리 날개라도 하나 달아 주옵소서.”
눈물인 듯 통곡인 듯 애절한 기도소리. 서럽도록 반가운 마음.
그러나 “어머님!”하고 차마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옛날의 제가 아닌 제가 어머님 앞에 섰을 때 그대로 한 줌 재가 되어 허물어지고 말 것 같은 어머님이기에 피눈물을 흘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님의 하늘에 사무치는 기도소리에 별들도 흐느끼는 새벽어둠이었건만 모든 걸 쓸어내리는 까치소리에 소스라쳐 눈을 뜨니 창살 너머 하늘빛이 어머님 눈시울처럼 붉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당신 생각만 하면 목이 메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당신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좋은 것으로만 먹이시고 입히시던 어머니. 즐거울 때나 기쁠 때는 까마득하게 당신을 잊고 있다가 괴로울 때 슬플 때 위험에 처할 때 비명처럼 당신을 찾으면 언제나 불원천리 맨발로 달려오시던 어머니.
언젠가 돌아올 못난 자식 기다림에 해질녘 동구 밖 길을 서성이실 어머니. 노송가지 사이로 떠오르던 보름달 같으시던 어머니. 마당가 복숭꽃처럼 곱디고운 그 얼굴에 어느 새 저승꽃이 만발해지고, 꾀꼬리가 시샘할 만큼 낭랑하시던 그 목소리는 어느새 섣달 삭풍에 우는 문풍지가 되시다니요.
돌아가야 할 고향을 두고 밤새워 기다리시는 어머님을 두고 돌아갈 수 없는 자식의 마음은 성터에 뒹구는 낙엽의 마음입니다.
어머니! 그러나 어찌 자식 기다리는 어머님의 마음에 비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각마다 꿈마다 어머님이 그리워 햇빛 밝은 날이면 그림자 되고, 달 밝은 밤이면 별빛이 되어 어머님의 창가에서 서성입니다.
그러나 어머님, 한으로 응어리진 어머님의 마음 뜨거운 눈물로 풀어 씻겨 드려야 할 육신은 여기 이렇게 꿈이 아니면 돌아갈 수 없는 너무나 먼 나라에 와 있습니다. 하루하루의 목숨을 잃는 만큼 불탄 날개에 깃털이 돋아나지만 겨울이 오고 봄이 또 오면 창공을 날아오를 희망보다는 어머님 늙어가심이 더 초조하고 슬퍼지는 마음 어찌 하옵니까.
어머님 밤마다 당신과 함께 별을 헤던 보랏빛 하늘 가득히 길고 서러운 편지를 쓰면서도 쓰는 대로 다 부치지 못하는 까닭은 편지받아 읽으시는 어머님이 저보다 더 슬퍼하실까 두려움 때문입니다.
못난 자식에게 답장 쓰시려고 뒤늦게 깨우친 서투른 글씨로 밤을 지새우며 답장 쓰실 어머님이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방울방울 흘리실 피보다 더 진한 눈물은 저의 꿈 속 같은 곳까지 붉게 물들이는 까닭입니다.
어머님께선 언제나 사랑의 마음을 흠뻑 담아 제게 편지를 보내 주십니다. 손이 떨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도 “건강하냐, 밥은 잘 먹냐, 어디 아픈 곳은 없고? 면회 자주 못가서 미안하다”는 등 언제나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쓰신 편지를 볼 때면 눈가에 이슬이 맺힐 정도로 슬픔이 밀려옵니다.
새벽닭이 울면 일어나 따뜻한 밥을 해 주시며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남모르게 뒤뜰 장독대 위에 정화수 떠놓고 빌고 비시던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 자식 된 마음의 정을 나누어 드리지도 못하고 나 혼자만 즐기며 살아온 지난날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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