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토록 먹물 옷을 입고서 찌푸려져 있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자욱한 흙내음과 함께 소나기로 바뀌었습니다. 때 아닌 봄 가뭄처럼 메마른 대지에 나리는 단비는 모든 이로 하여금 참으로 환한 웃음과 기운이 나게 만듭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전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요. 내생의 일을 알려면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라는 참으로 지극한 말씀이 지금 이 순간 더욱 절실히 다가오고 있는 듯하답니다.
‘누에가 자유로운 나비를 위해 고치라는 고통과 시련을 감내한다’는 말로써 나 자신을 위장한 채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되는대로 살아왔습니다.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며 ‘나비가 되기 전의 고치’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하는 아만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거기에 무엇이 문제인지 직시하지 않은 채 현실도피라는 방패를 내세워 가지 않는 세월 탓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언제부터인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아니 제 모습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저를 변화시켜준 새롭게 변해버린 세상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답니다.
지난 날 온갖 탐욕에 젖어 허튼짓을 일삼고 이기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 제 인생의 모습입니다. 종래는 스스로를 탓하는 것조차 망각한 채 지내기까지 하던 어리석은 사람이었지요. 제가 처한 현실의 원인을 오로지 다른 사람들과 세상 탓으로 떠넘길 뿐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진실을 오도한 채 오만을 떨던 저는 나에게 상처가 날 것이 두려워 남에게 먼저 상처를 주곤 짐짓 모른 채하곤 했습니다. 남을 해하면 결국 그것이 곧 나의 상처로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미루어 헤아리지 못했던 아둔함으로 중무장했던 것이죠.
그런 저에게 부처님의 고마우신 복덕이 남아있었던 것일까요? 부처님은 무명에서 허덕이고 있던, 남에게 상처를 입히며 자신을 보호하려했던 어리석은 저에게 진정어린 참회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무명의 끝없는 나락에 떨어져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제 몸과 마음을 참회할 수 있도록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부처님. 또 그 고결한 가르침을 만나게 된 인연복덕에 대한 고마움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누구일까? 도대체 이 놈은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기에 지금 이렇게 앉아 참회랍시고 아파하며 또 다른 번뇌 망상의 구름 속에 눈물짓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뇌하며 하루하루 해답을 찾고자 노력해봅니다.
부처님, 거룩하신 부처님. 우주에 충만하시어 아니 계신 곳 없으신 대자대비 부처님께 마음 다해 돌아가 의지하며 감히 기원 올립니다.
세상 어느 부모든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한결 같으시겠지만 제게 어머니는 더욱 특별합니다. 이토록 어리석고 불효막심한 저를, 세상사람 모두 손가락질하며 냉대하여도 자식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그저 포근히 감싸주시는 어머니. 당신 스스로 마음속 고통을 감내하며 이 못난 놈, 행여 고생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걱정해주시는 어머니. 언젠가 접견장에서 흰머리가 많아졌다는 저의 말에 오늘은 염색을 못하여서 그렇다고 애써 웃음지으시던 어머니. 당신의 안위보다 이 못난 놈 마음 아플까 싶어 다독거려 주시던 어머니.
지금쯤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시면서 숯검정이 되어 버렸을 가슴 위로 눈물이 가득하시겠지요.
중생의 소망 따라 그 몸 나투시는 부처님. 어리석고 불효막심한 이 중생이 감히 두 손 모아 합장해 봅니다. 부디 이제는 더 이상의 힘든 일과 고난이 없이 평안해지시기를, 저 마음 속 숯검정이 부처님 명훈가피에 힘입어 녹아질 수 있기를, 일심으로 발원하며 눈물과 함께 어리석은 지난날을 회상해봅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서부 경남의 제일 끝자락인 거창이랍니다. 지금은 고속도로도 생기고 해서 많이 좋아졌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깜깜 벽촌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궁벽한 시골이었습니다.
저의 집은 그래도 읍내에 있었기에 그나마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다지 크진 않지만 농장을 운영하셨고 어머니는 읍내에서 조그만 의류업을 하셨지요. 그 영향으로 저의 어린 시절은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우등생으로 부모님 어깨에 힘을 실어 드리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도 했었습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어둠과 밝음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고 하셨던가요. 제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쯤 우리집에는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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