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가족과의 불화, 직장 문제 등 여러 가지 고통들을 술로 해결하며 살아 온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나 하나는 괜찮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무슨 죄를 지어 고통을 받으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비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래! 괴롭고 고통스런 나를 부처님께 맡기자’ 이렇게 부처님의 뜻에 따라 살기로 작정하고 75년도에 중앙불교대학에 입학하여 재무부장이라는 직책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다녔다. 그러나 술 때문에 졸업은 참으로 어렵게 했다.
대학을 졸업 하면서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내 삶을 바꿀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 나를 맡기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민끝에 나는 평생에 해야 할 두 가지를 정하고 서원을 세웠다. 하나는 술을 끊는 것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가정화합을 이루는 것이다. 1998년 직장을 시골(충남 장항)로 옮기면서 마음의 병과 육체의 병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루의 일과를 아침 3시 30분에 기상하여 부처님께 108배를 올리고 마음공부를 위해 병상일기를 쓰는 심정으로 일기를 쓰며 오전을 보내고 직장에 나가 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하니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하는 듯 했다.
물론 이 기간동안 금주를 했다. 직장을 옮기고 회식자리에서 2번 정도 술을 약간 먹은 것 이외는 금주한 것이다. 이것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다. 금주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그러나 아상에 집착하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어리석고 힘든 삶인가를 부처님께서 보여 주시기 시작했다.
장항에서 생활한 지 정확히 두 달 후에 큰 아이 (당시 고등학교 2년)가 ‘기흉’이라는 병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세 번이나 하는 아픔을 겪었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나가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어 처음에 공기만 빼는 수술을 했는데 재발되어 두 번, 세 번의 수술이 이어지고 3개월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면서 큰 아이는 가고 싶은 대학을 포기했다. 대학보다는 우선 건강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절하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부처님을 원망했다. ‘부처님! 세상에 장애자로 태어나서 주위로부터 온갖 냉대와 멸시를 이 정도 받고 살면 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을 제게 주시는 것입니까? 전생에 얼마나 많은 업보가 있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너무 힘들었다. 결국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고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파서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매일 술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병원을 방문할 때도 술에 취해 있었으니 나를 바라보는 집사람과 아이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런 일이 있다고 술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됐음을 술이 깨서는 깨닫곤 했지만 퇴근 무렵이면 다시 모든 것이 귀찮고 오직 술만 생각이 났다.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그리고 술이 깰 때쯤이면 속이 너무 쓰려 해장술을 하지 않으면 못 견뎠다. 이미 알콜중독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스스로 술을 제어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1999년 4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좌측 대퇴부 수술을 받았다. 10주간의 병원 생활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수술대 위에서 죽음을 보았고 내 진실한 주인공을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죽으면 없어질 몸뚱아리, 죽으면 없어질 영혼, 죽으면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닌 것을 살면 얼마나 산다고 집착하고, 분노하고, 얻으려 했을까’
비로소 아상을 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집착에서 벗어나니 그렇게 마음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제행무상인 것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 자신을 자학하고 분노하고 사람들을 미워했단 말인가? 일순 노여움과 미움이 사라지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분명 참회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1999년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썼다. “알콜중독자 이권상은 1999년 12월 31일자로 죽어 땅속에 묻혔노라”고.
2000년 1월 1일부터 술을 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1994년부터 1999년 까지 6년 동안 위기 속에서 살았고 자칫했으면 인간으로서의 생을 포기한 삶이 되었을 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구해주신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가피력인가?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후부터 7년 만에 술의 노예에서 해방되었고, 평범한 다른 사람들처럼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큰 아이는 대학교에 입학해 1년을 다니다가 군복무를 마친 뒤 복학을 했고, 둘째도 대학교에 입학하여 어느 새 졸업반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은 가정화합을 이루어 냈으며 내 건강을 되찾은 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야 하는 당위성, 바로 ‘꿈’을 되찾은 것이다. ‘정년 때까지는 가정을 위하고 그 후부터는 나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는 것이 나의 소박한 꿈이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무사 공부를 하고 있다. 재력 없이 마음만 뒤따르는 봉사는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체장애자가 할 수 있는 봉사는 육체적인 것이 아닌 지적인 도움이고, 물질적인 도움이라는 판단도 했다.
어려운 납세자들을 돕는다는 것, 그리고 그들 편에서 같이 고민하고 괴로움을 나눈다는 것 참으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비록 지금은 소쩍새 마을과 너무나 작은 인연을 맺고 있지만 반드시 좀더 큰 인연을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10년 동안 병상일기처럼 써 온 일기는 수행일기가 되었고, 나를 돌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피력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으며 그것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을 때 행복이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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