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와의 결혼을 고집했고,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옛말처럼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 결혼하는 과정에서도 택일이나 집을 얻는 방위, 함 들어오는 날짜 등의 문제에서 사사건건 부딪쳐야 했고 나는 그런 형식들에 지쳐갔다. 그러면서 나는 애꿎게도 이제 불교신자라는 것에 싫증을 느꼈다.
사주팔자와 궁합, 택일이라는 간판만 보아도 고개를 돌리게 되었고, 그 간판에 그려져 있는 만(卍)자가 꼭 사찰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내가 불자였기 때문에 사주팔자를 보았고 그로 인해 힘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내 머릿속에서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떤 종교든지 가지고 싶었던 나는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도 마음이 온전히 편치 않았고, 순간적으로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나의 모태신앙인 불교를 저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올바른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엄마의 깊은 불심은 어떤 식으로든 분명 나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임신을 하였다. 결혼하고 바로 생긴 아이라 더욱 반가웠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남편이 직장에서 유난히 근무지 변경 발령을 많이 받아 안정적인 생활을 위협받았다. 이렇게 연이어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기자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궁합문제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 궁합이 좋지 않아서 자꾸 이런 답답한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남편이 궁합이 나쁜 나와 결혼해서 안 풀리는 것은 아닐까?’ ‘그때 어느 점집에서 시험 준비를 일년 더 하라고 할 때 해볼 걸 괜히 남편 고집대로 그만뒀나?’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급기야 그렇게 좋아 결혼했던 우리도 티격태격 하는 날들이 늘어갔고 서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점집을 배회하기 시작했고 뭔가 시원하게 해결할 대안을 그들이 찾아주길 기대했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은 절은 여전히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이들로 북적였다. 한동안 그렇게 절을 오가다가 기본교육부터 받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마침 친정언니가 기본교육을 받아 좋았다고 자꾸 권하던 차였다. 돌아보니 어릴 때부터 엄마 손잡고 절에 자주오기는 했지만 체계적인 교육이라고는 어린이 법회에 몇 번 참석한 게 다였고, 초파일에 연등 켜기 위해 연례행사처럼 들렀던 것이 내 불자생활 이력의 전부였다.
공부를 통해 실천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인연이 된 조계사 보도팀에서의 자원봉사는 나를 진정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올린 글들이 홈페이지에 하나 둘 쌓여가면서 느껴지는 책임감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아무것도 몰라 백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가 그동안 불교신자라고 말하고 다녔던 사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공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내 마음의 깊이가 조금씩 깊어지면서 남편과 자식 그리고 친정과도 자연히 관계가 원만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현실과 외부에 보여지는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달라지니까 상대방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다보니, 결혼과정에서 앙금이 남아있던 남편과 친정의 마음도 정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불교를 공부하면 할수록 “남편과 자식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 마음 깊은 곳의 아픔을 스스로 치료하고 보듬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 속에서 나의 어느덧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우선 내가 너무나 힘들어했던 일들이 생사를 가를 만큼 힘든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초기경전에서부터 경계하셨듯이 점술에 의지하여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려했던 것이 첫 번째 잘못이었고, 가족의 우려를 부드럽게 설득하지 못하고 강하게 고집 부렸던 것이 두 번째 잘못이었다. 세 번째는 연기법에 의한 인과를 내 의지와 욕심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오만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으며, 네 번째 이 모든 상황을 원망하며 다른 사람과 상황을 탓한 것이 또한 나의 잘못이었다.
하나씩 나의 잘못을 짚어가면서 그동안 엄마가 사주팔자에 의지해서 나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있었고, 내 마음이 점술가의 말에 흔들렸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자만하고 오만하여 내 스스로를 높이던 상(像)을 깨는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을 깨는 작업은 만만치도 쉽지도 않은 과정이었다. 상이 깨졌나 싶어 돌아서면 다시 나타나는 또 다른 상을 알아차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제야 나의 잘못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남은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평생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을 되풀이 하여 더 많이 깨닫고 수정하는 일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나 혹은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다. 어느 집에 가면 부처님 상을 모셔두고 미래를 점치고 있다. 그 집을 다녀간 사람 중에 어떤 이는 ‘부처님은 점술가에게 신통력을 주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부 신자가운데는 스님께 결례인지도 모르고 사진을 들이대며, “우리 아들이 언제 장가를 갈 수 있을까요?”라며 묻기도 한다. 또, 어느 스님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 스님과 절은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런 일부 불자의 태도는 타종교의 집중 공격대상이 된다. 자비와 지혜로 마음을 닦고 깨달음을 얻는 불교사상이 기복이나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는 것으로 변질돼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한때 수많은 철학관을 전전하며 사주와 궁합을 봤고 지금도 누가 점집에 간다면 ‘한번 따라가 볼까?’하며 흔들리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불자는 사주궁합을 본다’는 통념이 깨지고, ‘불자는 인과(因果)를 믿는다’는 말이 일반화되었으면 한다.
답답한 마음에 혹은 호기심에 미래를 점치러 가는 이들에게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왔다 가는 것이고 한번의 점술로 인해 당신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는 충고를 감히 해 본다. 점술은 아주 잠깐일지라도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때 현실 직시의 눈을 잃어버리고 내리는 결정은 아주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나만큼 내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끝)

































.gif)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