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까지도 불자가 사주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일부 스님들은 공공연하게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해주었고, 개인적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과 결혼을 하면서 겪은 일들과, 불교와 진정으로 만나면서 알게 된 짧은 지식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바로 이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고 감정상의 문제라 소개하기가 쉽지 않지만, 아직도 사주나 궁합이 결혼을 하는데 걸림이 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느 늦가을, 외로운 마음에 나간 미팅에서 그를 만났다. 테이블에 앉으려는데 바닥에 동전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동전을 줍는데 “그거 제 건데요”하며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만약 오늘 미팅이 잘 되면 이건 하늘의 뜻이겠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춘기 때부터 이상형을 상상하곤 했는데, 똑같진 않았지만 그에게서 문득문득 이상형의 실루엣이 겹쳐짐을 발견할 때의 설렘은 참으로 신선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그런 느낌으로 1년을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설레는 마음은 ‘좋은 인연’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집에서도 둘 사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리의 만남에 호의적이었던 엄마가 그의 생년월일을 알아오라고 하셨다. 두 언니의 결혼 때도 형부의 생일을 물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결혼에 필요한 통과의례로 생각한 나는 주저 없이 그의 생년월일을 말씀드렸다.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불자로서 신심이 대단하였다. 특히 남편과 자식을 위해 새벽기도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전국 방방곡곡 소문난 기도도량은 빠짐없이 찾아다니셨다. 심지어는 자식 도시락 싸주고, 남편 아침을 챙기는 것보다 기도도량에 가기 위해 버스시간을 맞춰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경우까지도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신심 깊은 불자였지만 엄마는 사주팔자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사주가 좋으면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느 스님의, 아들 둘을 낳아야 부부가 백년해로 할 수 있다는 말에 연이어 딸을 두었으면서도 아들 둘을 기어이 낳았을 정도였다.
물론 궁합을 보면서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고, 좋은 궁합은 다른 부족한 점들을 모두 덮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셨다.
엄마는 궁합을 무시하고 결혼한 이모가 온갖 고생을 하며 살자, 모든 게 궁합이 안 맞는 결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 짓곤 하셨을 정도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불교와 사주궁합의 특별한 연관성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불자집안은 큰 결정이나 결혼에 있어 사주와 궁합을 보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궁합을 보고 오신 엄마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와 나의 궁합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제법 큰 시험을 준비 중이었는데 시험에 합격해도 결혼은 생각해 봐야겠다고 하셨다. 이 말은 궁합이 안 좋으니 당장 헤어지라는 의미였고, 좋은 궁합이 결혼의 필수라고 생각하던 가족은 내가 그를 만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전에 우리의 만남에 호의적이던 감정은 반대가 되었고,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의 가까운 친구도 이 말을 듣고는 헤어지는 것이 낫겠다고 조언할 정도였다.
나는 다른 곳에서 궁합을 봐서 좋다는 얘기를 듣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친구와 혹은 엄마와 무수히 많은 점집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좋은 이야기로 듣는데, 엄마는 한 번 인식이 되어서인지 나쁜 이야기만 들으시는 것 같았다.
분명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해석이 달랐으니 말이다. 어쨌든 다시 간 곳에서도 ‘찰떡궁합’ 이라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결국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엄마의 추가 설명으로 인해 가족의 분위기는 더욱 나빠져 갔고, 가족 중에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친구마저 말렸고, 주변에 어떤 이가 궁합이 안 좋았는데 결국은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좋았고, 딱히 헤어지자고 말할 명분도 궁합 이외에는 없었다. 한 번은 궁합을 이유로 헤어지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연락하지 않고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 매듭을 짓고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 내리는 함박눈에 그만 마음이 풀려 결국 재미있게 놀다가 궁합 이야기는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그 후에도 몇 년을 만나는 동안에도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서로 헤어질 정도의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고 상대를 더욱 신뢰하는 마음만 깊어갔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인해 죄짓는 기분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가족에게는 그에 대해 얘기하기 힘들어지게 되었고, 내 스스로 마음을 닫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제 그와 만나는 눈치만 보여도 싫은 내색을 하셨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급기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집안의 결혼 반대로 고민하던 남녀가 동반자살을 시도했다는 이야기가 갑자기 남의 일 같지 않게 들렸다. 그와 헤어지고 궁합 좋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해보았지만 다른 사람과 잘 살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이런 마음들이 바로 인연이라는 증거였는데도 그때는 그것을 알고 현명하게 대처하기보다 내 마음을 돌릴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에 답답했을 뿐이었다.
궁합 때문이었을까? 그는 몇 년간 준비하던 시험에 간발의 차이로 자꾸만 실패하였다. 시험이라도 합격했어야 당당하게 그와의 만남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 때의 나를 돌이켜 보건데 공부에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계획했던 시나리오에 그가 맞춰주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반 직장에 들어간 그가 우리 가족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청년 취업난에 나라가 들썩이던 상황에서 취업을 한 것만도 기특한 일인데 오히려 시험에 떨어진 실패자라는 낙인까지 찍혀버린 것이다. 궁합문제에 이어 시험 실패자와의 만남 자체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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