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이란 시간은 가끔은 빨리, 어떨 땐 지루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힘든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여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작은 딸이 유치원을 졸업하고 큰 딸은 중학생이 되었다.
글을 잘 쓰는 큰 딸은 인도여행 하기를 막연히 희망했다. ‘꿈은 실천하라고 있지 간직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에 자신의 꿈을 표출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 꿈을 현실화시켜주었다.
내가 다니는 절에서 가는 성지순례단에 끼워 인도여행을 보냈더니 나이든 보살님들 사이에서 중학생 꼬마가 사랑을 독차지하고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와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봉까지 다녀왔다.
딸은 그해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청소년 백일장에서 ‘나의 꿈’이란 제목의 시를 써서 은상을 탔다.
어느덧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가고 작은 딸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성장했다. 작은 아이는 학교공부를 잘했다. 그런데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던 2학년 때 갑자기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난 그 말을 그냥 귓등으로 넘기지 않았다.
미술학원을 한번 다니게 한 뒤 담당 선생을 만나 물어보니 그만한 재능이라면 키워주는 게 좋을 것이라 했다. 그 말에 난 딸의 장래를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반면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마음 한편은 아팠다. 물론 나는 그가 아이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거나 만나는 것을 금지시킨 적은 없었지만 그는 지난 10년 간 전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가끔 그 사람의 소식을 풍문으로 듣기도 한다. 그가 가끔 정신세계에 관한 책을 다루는 J출판사에서 명상이나 선과 요가 등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자후기에 그는 현재의 생활에 지극히 만족하고 이렇게 달라진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고 썼다. 또 목포 등지에 수련생들을 두고 정신훈련과정이나 명상그룹을 지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에 관한 기억들은 겉으로 보면 잊혀진 것 같으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지워질 순 없는 과거다. 오랜 세월, 용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대가 내게 용서를 구한 적이 없으니 그 아픔이 내마음속에 단편적으로 보관된 채 가끔씩 폐부를 찔렀다.
그날 내가 두 사람과 마주 앉아 바라보던 유달산 아래의 흐릿한 회색빛 바다 풍경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십만배 오체투지 기도가 거의 끝날 무렵에 난 그 사람의 소식을 또 들었다. 전라북도 소재의 한 도시에 있는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단다. 부부야 헤어지면 남이라지만 자신의 형편이 나아져도 아버지임에도 아이들을 한 번 찾지 않는데 대해 씁쓸하기도 하고 딸 또래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딸들에 대한 의무를 져버린 그가 부도덕하게 느껴졌다. 큰 딸이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어쩌다 찾아가도 그는 꼭 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곤 했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양육비와 은행에 빚졌던 나와 동생의 채무를 갚아줄만큼은 형편이 나아진 것도 같았다. 세월이 지나도 양육비청구는 받을 수 있으니, 나는 그에게 청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좀 다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나는 늘 내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내 인생의 황금기와 내 딸들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멍들게 한 사람에게 자비심을 낼 수 있을까?
그런데 십만배를 하면서 나는 그 대답을 찾게 됐다. 절을 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득은 내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다. 내 능력과 인격에 대한 신뢰감은 무엇으로 표현하기 힘들만큼 경이로웠다.
전에는 항상 마음이 자주 초조하고 두려움으로 가득 차, 기도 할 때마다 현 상황이 내 능력에 부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을 고치니 나는 내 스스로 평가해 온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마음먹고 결단을 내리면 어떤 상황이라도 결심한 바를 변함없이 추진할 수 있는 놀랄 만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게 살며 미래 또한 그럴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100% 신뢰감이 바로 올 여름, 내가 땀을 비 오듯 쏟아가며 절을 한 수행의 결과였다.
바라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기도의 힘이다. 남보다 좋은 환경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남보다 더 좋은 꿈을 꾸면 된다. 그 희망을 묵묵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창밖의 풍경이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된다. 희망이 보이는 사람에겐 주변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희망이 생기면 문제는 사라진다.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좋은 환경보다는, 간절한 희망이었다.
아이들을 잘 길러낼 수 있었던 것도, 돌아보면 내가 비록 풍요롭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간절하게 꾸었더니 거의 다 실행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안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간 내가 벌어서 아이들과 함께 쓴 양육비는 이제 그에게 청구해서 받을 수 있는 액수의 배도 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가 갚아야할 빚이지만 끝없이 채무정리를 독촉하는 금융기관에 나는 지난 5년간 일정액을 수입에서 빼서 다 갚아냈다.
이제껏 그랬듯 앞으로도 내가 마음먹고 열심히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으리라는 강한 확신이 내면에 느껴진다.
그가 어디선가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견해를 달리하면 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까진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나에게 청산해야할 빚을 일부러 회피했지만 그도 자신의 도리를 깨우칠 때가 되면 내가 독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갚을 것이다. 그전에 요구해봐야 악연의 고리만 더 세게 묶는 것이리라.
부처님 앞에 앉아 다시 돌아본다. 지난 날 16년을 한결같이 “내 딸들이 남을 돕는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기를 힘을 내게 주세요”하던 내 기도도 이제는 끝이 얼마 안 남았다.
올해로써 십만배의 오체투지 기도는 끝이 나지만 그래도 앞으로 계속 기도는 이어질 것이다. 내 능력이 딸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좀 더 넓은 사회로 번져서 널리 쓰여지길 희망한다. 안으로는 내 과거인 그를 지우려 할 게 아니라 자비심으로 지난 날 그의 행위에 대해 용서하고 내 과거와 악수를 해야 한다. 난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해서 악연의 고리가 윤회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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