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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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상)/최현숙(서울 서초구 양재동)
올 여름에 가까운 도반으로부터 한경혜 씨의 신행수기 <오체투지>를 선물 받았다. 신체장애인 한경혜 씨는 일곱 살부터 20년 동안 매일 1천배를 계속해왔지만 자신의 몸이 나아지지 않자 더 어려운 수행을 결심했다. 백일동안 매일 만 배씩 부처님께 절을 하고 그 결과 놀랍게도 몸이 더 건강해지고 정신력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오체투지>는 그 기도 과정과 어릴 때의 이야기를 기록한 수기 형태의 수필집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 그동안 초발심 때의 간절한 마음을 잃고 세월 가는대로 그럭저럭 지내던 내 자신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 한 번 강도 높은 수행을 통해 더 고양된 자아를 완성하겠다는 욕구가 새롭게 났다.
특히 책 속에 나왔던 ‘인생의 용광로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인생에서 언젠가(Some day)라는 말은 없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하라.’
그 책을 끝까지 읽은 그날 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방석을 펴고 앉았다. 당장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부처님 명호를 암송하며 한 번 씩 절하기 시작했다. 밤 10시에 시작한 절은 꼬박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1천배를 채울 수 있었다.
하루하루 기도하면서, 새로운 결심이 섰다. 절에 가서 입재도 올리지 않고 시작한 기도지만 회향은 제대로 해야겠다고 작정했다. 작은 딸이 대학수능입시를 치르는 11월까지 1만 부처님의 명호를 암송하며 총 십만배를 오체투지하겠다는 발원은 그렇게 세워졌다. 절을 처음 시작한 날은 2006년 6월 16일이었다. 회향 예정일은 수능시험 바로 전 일요일인 11월 12일로 잡았다.
절을 시작한 시기가 한여름이었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서 밤이 되어서도 더위는 가실 줄을 몰랐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절을 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머리, 목덜미와 법복 속의 종아리에도 땀이 흐르고 속옷은 금방 땀으로 푹 젖었다. 행여 몸이 젖은 상태에서 감기 들까봐 에어컨은 끄고 창문을 연 채 선풍기만 켜고 절을 했다. 찌는 듯 한 더위로 땀범벅이 된 채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움직이니 발끝, 종아리, 발목 관절 마디마디에 심한 고통을 느꼈다. 700배를 마치면 밤 12시를 훌쩍 넘었다.
그렇게 절이 끝나면 뜨거운 물로 머리부터 샤워를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싫었던 더위였는데, 일념으로 매진하다보니 크게 더운 줄을 몰랐다. 더위를 느낄 틈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면서 무엇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것을 더 못 견디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비로소 올 여름, 더위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음속에 내가 바라는 희망을 품고 있으면, 지금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희망 속에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매일 밤 기도를 마치고 나면 그 시간까지 그림 그리고 있을 작은딸의 미술학원으로 차를 운전해갔다. 큰 딸은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고, 아직 20살인 작은딸은 미술대로 진학하기 위해 매일 밤 12시가 넘도록 화실에서 그림에 매진한다.

나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직장을 다니며 두 딸을 키우는 경제적, 정신적 가장이기 때문에, 매일 2시간 30분씩 시간을 내서 절을 하기도 시간이 빠듯했을 뿐 아니라, 직장을 다녀와서 녹초가 된 몸으로 절을 하는 것도, 기도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공부방을 운영 중인 나는, 처음에는 수업이 끝나고 난 뒤 근처의 사찰을 찾아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사찰조차 문을 닫는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에도 기도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만의 공간을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돌아간 공부방의 문을 잠근 뒤, 준비해 온 법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한 구석에 방석을 놓은 뒤 한배 한배씩 절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 곳, 이 자리에서 길(道)을 찾는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절을 끝내고 나서 차를 운전해 작은딸의 학원으로 가는 길은 하루의 피로 때문에 늘어지고 싶은 욕구와의 싸움이다. 만일 절을 안했다면 집에서 TV를 켠 채 누워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딸애의 학원이 끝나기만을 무료하게 기다렸으리라.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절을 계속해 나갔다.
2년 전 작은 딸은 외국어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환경 디자이너’를 장래의 직업으로 택했다. 그 뒤 처음으로 미술 학원을 다니며 1년 반 정도 배운 그림실력으로 한 대학의 의상디자인과에 합격했다.
뒤늦게 진로를 정해 실기 공부한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가군과 나군 시험 때까지 실기실력이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의상 디자인과 환경 디자인은 같은 디자인이지만 활동하는 분야가 전혀 다르고 나 또한 딸의 능력을 아끼기에 아깝지만 일 년 더 노력하고 재도전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다른 많은 재수생들이 그렇듯, 재수 1년은 고등학교 3년 전부를 합친 것 만큼이나 힘들다. 그림 실기수업까지 하니 더욱 그렇다.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부담이 됐다. 그러나 나는 딸에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시련을 견디고 한 번 더 도전할 기회를 갖는다는데 큰 의미를 갖자”며 “일 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셈치고 재수를 같이 하자”고 다독였다.
아이를 데리러 학원에 가는 길에 차 속에서 BBS(불교방송)의 ‘살며 생각하며’를 듣는다. 조용하고 사색적인 진행자의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와 방송에 직접 참여하는 청취자의 가지가지 사연을 듣는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귀가중이거나 아니면 막 집에 도착해서 하루 겪은 일로 마음이 산란할 때 위로를 받기 위해 전화했다는 청취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보면 나 역시 힘들게 마감한 내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집에 돌아오면 난 도시락 설거지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지만 딸은 다시 책상에 앉는다. 비록 피로에 찌들고 힘들지만 딸에겐 자기가 원하는 세계로 꼭 간다는 자기만의 꿈이 있다. 나는 딸의 모습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치와 희망을 엿본다.
‘꿈이 있는 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던가. 언제나 두 아이들에게 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길러왔기에,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지금 흘린 땀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계속)
2006-11-06 오후 3: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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