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는 수술 후 며칠 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난 며칠 전처럼 초조하거나 불안하지만은 않았다. 초조한 마음이 들면 이내 주인공을 찾았다.
“주인공 너만이 할 수 있어” 그렇게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맡기고 또 맡겼다. 그러면서 틈틈이 <삶은 고가 아니다>를 몇 번이고 읽어 내려갔다.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힘들고 고단한 스님의 삶은 내 심장을 아리게 만들어 눈물을 훔치게 했고, 당당히 걸으신 구도의 이야기는 감사하지 못하고 오만했던 내 삶을 뒤돌아보게 했다.
며칠 후 난 다시 신기한 꿈을 꾸었다. 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바다 속으로 의식을 잃은 채 난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던 난 희미한 불빛에 눈을 뜨고 빛이 있는 쪽으로 헤엄을 쳐갔다. 밝은 빛 속엔 부처님 한 분이 너무도 밝은 미소를 지으시고 나를 바라보시며 앉아 계셨다.
난 너무 신기해 ‘야 이렇게 깊은 바다 속에도 부처님이 계시네?’ 하고 생각했다. 그때 어디선가 ‘난 해수관음이니라’ 하는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참 신기한 꿈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그 꿈을 꾼 날 기분 좋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병원을 찾아가니 부상이 경미했던 아주머니는 퇴원을 하셨고, 의식이 없던 아주머니는 의식이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병실에 들어서니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죽을 먹여주고 계셨다. 아저씨께서 아주머니에게 큰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여보! 이 사람이 당신 사고 낸 그 사람이야. 알겠어? 그동안 매일 당신 보러 왔었어!”
아주머니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말씀을 하셨다. 아저씨는 아주머니 입에 귀를 바짝 대고 들으시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고맙다네, 자네!”
정말 날 알아보시고 하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가 이제 식구들도 다 알아보시고 고비는 넘긴 것 같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사고 내고 싶어서 내는 사람도 없고, 저 사람도 자네도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게.”
아저씨 말을 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저씨는 그런 내 손을 잡으시며 “많이 힘들었을 거야. 이제 그만 오게, 마음 써줘서 많이 고마웠네”하고 말씀하셨다.
고마웠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인연 짓게 되어 고마웠고 또 내 삶을 뒤돌아보고 이 인연으로 인해 마음의 주인공을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고맙고 감사했다.
그 후 내 삶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중무휴의 3교대 근무에도 휴일이면 안양까지 선원을 찾아갔다. 비록 천수경도 반야심경도 알지 못했고 예불도 드릴 줄 몰랐지만 그냥 선원에 앉아 있는 것이 좋았다.
신도들을 따라 도는 탑돌이도, 큰 감나무 밑의 벤치도, 항상 밝게 웃으시며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시는 신도님들의 웃음 띤 얼굴들도 너무 좋았다. 법당 안에 걸려 있는 큰스님 말씀 하나하나는 가슴속에 들어와 감동을 주었다.
그만 오라는 아저씨의 말에도 가끔씩 찾아 뵌 아주머니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차츰 좋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지나니 진짜 ‘마음공부’가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 달 동안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불교에 관한 책도 사보고 했지만 확실한 어떤 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스님들께 가르침을 구하고도 싶었지만 신도들이 너무 많아 정신없이 바쁘신 스님들에게 선뜻 용기를 내어 가르침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집 근처 절에도 가보고 인터넷의 온라인 법당이며 불교관련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법을 구해봤지만 마음만 점점 더 혼란스럽고 조급증만 더해져 갔다.
한편으론, 혹여 내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해서 마음이 흐트러지고 나태해져 편하고 쉬운 어떤 방법을 찾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내가 구하고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용기를 내서 한마음 선원 홈페이지에 가르침을 구하는 글을 올렸더니 생각지도 않게 답변 메일을 받았다.
“내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근본에서 나고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매사 모든 것을 근본에다 진실하게 맡겨놓고 ‘당신만이 해결 할 수 있다’고 지극하게 믿고 맡기세요. 가스레인지 하나만 있으면 라면도 끓여 먹고, 밥도 해 먹고, 국도 끓이듯이 내 안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근본에다 맡겨놓고 마음을 편안히 하세요. 가스레인지를 쓸 줄만 알면 모든 것을 다 해 먹고도 부족함이 없듯이 그렇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 이 마음의 도리이니까요.”
망치로 얻어맞은 듯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다 맡기면 그만인 것을, 근본에서 나온 것 근본에다 맡기면 그만인 것을 무슨 가르침이며 받을 것이며 방법을 구하려고 조바심을 내고 찾아 다녔는지….
어렵고 힘들고 아무것도 모를 땐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었는데 이제 조금 편해지고 뭘 좀 알게 되면서부터 무엇을 바라고 이루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구하는 방법까지도 주인공에게 다 맡기면 그만인 것일 뿐인데 말이다.
얼마전부터 근무지가 바뀌는 바람에 전라도 군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선원에 나가질 못하고 있다. 직장일이 바빠 이곳의 절에도 다닐 여유가 없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인터넷을 이용해 신행을 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열린 절’의 법현 스님으로부터 아침마다 108배를 해보라는 권유로 작년 추석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108배를 하고 있다.
라디오 방송 중 ‘정목스님의 마음으로 듣는 음악’ 도 열심히 애청하며 내 안에 나를 가두지 않고 모든 것을 믿고 맡기며 자유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도 귓가에 큰스님의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
“주인공에게 맡기고 지켜보면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교통사고로 인해 고통을 받고 계신 김연순 님이 하루 빨리 쾌차하시길 빌며, 또 ‘마음 주인공’을 알게 해준 인연에도 깊이 감사를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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