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 종합 > 기사보기
인연을 짓다 (중)/황해성(군산시 지곡동)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흔히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실려 간 병원 응급실로 향하고 있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는 도중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혹시 돌아가시지는 않았을까’ ‘혹시 큰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별 일 없겠지’하는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두 아주머니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주머니 한 분이 보이지 않았다. 응급실에 계신 아주머니는, 자기는 발목에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는데 다른 아주머니는 의식이 없어 큰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고 했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큰 병원으로 갔다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이송됐다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술실 앞엔 모범 운전자 복장을 한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사고 낸 사람이야?” 하고 소리를 쳤다.
“네.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 사람아 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사람 다 죽게 생겼어.”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마치 큰 죄를 짓고 끌려온 죄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나 때문에 사람이 다쳤으니 내 책임이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머리에 피가 고여 뇌수술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잠시 후 아주머니의 남편이 나를 밖으로 불렀다. 의사는 장담을 할 수 없으며, 일단 수술이 끝나봐야 알 것 같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여기서 이렇게 있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그 남편이라는 분의 태도는 오히려 나보다도 더 침착했다. 내 멱살을 쥐고 흔들어도 시원찮을 상황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내가 교통사고를 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내가 낸 사고로 인해 사람 목숨이 위태롭게 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 수술실 문이 열리고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은 잘 됐으니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간절히, 정말 간절히 수술이 잘 되길 기도했다. 아주머니도 아주머니지만 아주머니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주머니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을 뒤로 하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일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지금 일어난 이 일이 정말로 나에게 일어난 일인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왜?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나를 보며 선배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렇게 힘들어하지 마. 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사고를 내고 싶어서 낸 것도 아니니까 자책할 필요 없어. 그리고 그 사람들 앞에서 너무 죄인처럼 그러지 마. 보험 들어 있으니까 보험회사에서 다 알아서 할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 알았지? 힘내 임마!”
하지만 그런 위로의 말도 내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닥친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절박한 문제였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TV에서나 보았던 사고가 나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지만 ‘그동안 누구에게 악하게 한 적도 없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는 생각이 드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사고 순간이 떠올라 눈을 감기가 겁이 났다. 아내는 다 잊어버리고 그만 자라고 했지만 그게 맘대로 되지가 않았다.
‘오늘 비가 오지 않았다면? 집에서 조금만 더 일찍 나섰다면? 아니 그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리곤 이내 ‘그런데 그 아줌마들은 비도 오는데 왜 길 한가운데를 무단횡단 한 거야? 그래서 내가 피해를 보고 있잖아’ 하는 원망까지 생겨났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머니들의 경솔함이 원망스러웠고 분한 감정까지 생겨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흥분된 마음으로 자리를 차고 일어나 물을 마시러 책상으로 갔다. 그 때 책상 위에 놓여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삶은 고가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며 대행 스님이 미소 띤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순간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처럼 따스함이 느껴졌다. 매달리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도와주세요, 스님!”하고 외쳤다.
스님에 매달리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얼마 전 까지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종교에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을 비웃은 나 자신의 터무니없는 오만함이 떠올랐다. 내 자신이 참으로 어리석었음을 깨닫게 됐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 흘리며 스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스치듯 한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 기도하자. 마음의 주인공에게 맡기고 지켜보자. 지극하게 믿고 맡겨보자.’
대행 스님의 가르침대로 하자고 결심한 순간 머리 속이 환해짐을 느꼈다. 몇 번을 되풀이했다. “주인공 너만이 할 수 있어, 너 만이 할 수 있어. 주인공!”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주인공에게 맡긴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그러자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짐이 느껴졌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지옥과도 같았던 마음이 생각 하나를 달리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스님의 책을 머리맡에 두고 조용히 침대에 누우니 이내 스르르 눈이 감기며 잠이 밀려왔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난 어느 절에 와 있었다. 처마의 단청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쳐다보고 있는데 단청 위로 인자한 모습의 대행 스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난 “스님” 하며 합장을 했다.

햇살이 눈부셨다. 얼마를 잤는지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꿈속에서 스님을 만나서인지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주변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가는 것을 말렸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고가 났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하고 싶었다.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분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아주머니가 쾌차하기를 기도하는 것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2006-10-16 오후 1:29:43
 
 
   
   
2026. 6.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