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가정환경 조사서를 쓰면서부터 종교란에는 ‘불교’라고 동그라미를 치면서 30여년을 살아왔지만 정작 절에 가본 것은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잠깐 들러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종교란에 불교라고 동그라미를 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초파일이면 등을 밝히러 절에 다녀오시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탓일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 한 후 군대를 다녀오고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해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고 소박하지만 행복을 느끼며 살아오던 나에겐 불교는 그리 큰 부분이 아니었다.
아니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대한 어떤 오만함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이나 예수님께 빌고 기도하며 무엇을 바라고 의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에게 ‘마음공부’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친구는 ‘마음공부’를 배우러 ‘한마음선원’에 다닌다고 했다.
‘마음공부? 아니 마음도 공부를 해야 하나? 한마음선원은 또 뭐야?, 혹시 그거 아니야, 도를 아십니까 하는….’
지레 짐작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평소 또래 친구들과 달리 평온한 인상에 마음도 넓어 친구들 말을 잘 들어주고 가끔 도인같은 말도 곧 잘 해서 황당할 때가 가끔 있기도 했지만 믿음직스럽던 그 친구가 진지하게 한번 가자고 권유했고, 궁금증이 일어 같이 가보기로 하였다.
일요일 아침 전철을 타고 도착한 한마음 선원의 첫 인상은 내 짐작이 맞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현대식의 대리석 건물. 절이라면 조용한 산속의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에 예쁜 단청과 맑은 풍경 소리를 연상했던 나에게 한마음선원의 모습은 조금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친구를 곁눈질로 따라 하며 어설프게나마 법회를 마친 후 친구의 주선으로 스님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도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한마음 주인공에게 맡겨라, 그리고 지켜 보아라” 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에겐 스님의 귀한 말씀이 귀에 들어 올 리가 없었다. 그저 괜히 왔다 싶고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친구가 선물한 <삶은 고가 아니다>라는 책을 손에 들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침대에 던져놓았던 책을 다시 찾은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야간 근무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을 책을 고르다 ‘한 번 읽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삶은 고가 아니다>를 들고 출근을 했다.
책 표지에 실린 대행스님의 사진을 보며 왠지 모를 푸근함을 느끼고 읽어 내려간 책 속엔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오직 주인공을 믿고 구도의 길을 걸으신 스님의 이야기가 때론 눈물겹고 때론 흥미진진하게 그렇게 생생히 살아있는 이야기로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책 속에서 대행스님을 만난 후 ‘마음공부’라는 것과 선원에 대한 첫 인상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선뜻‘ 마음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그 후 그렇게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천천히 잊어갈 즈음이다. 온 나라가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에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 해 겨울 내겐 너무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그 날은 겨울 비 치곤 꽤 많은 비가 내렸다. 3교대 근무를 하는 나는 저녁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저녁 6시에 집을 나섰는데도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 앉아 있었고 모두들 자동차 불빛을 밝히고 서둘러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출ㆍ퇴근길은 언제나 혼잡하다. 그날도 매일 다니는 사거리 길이 꽉 막혀 있었다. 이렇게 막히다가는 출근이 너무 늦을 것 같아 지름길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핸들을 돌렸다. 지름길은 차량 통행이 뜸한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였다.
비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조심하며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앞쪽 도로에 하얀 것이 보이는가 싶더니 차에 "쿵" 하고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하고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내 차 앞에서 넘어졌다 일어나며 신발을 찾고 있었다. 난 내가 사람을 치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덜컥 겁이 났다.
아주머니를 일으켜 세우면서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내 신발, 신발 좀 찾아 줘" 하며 일어나더니 신발을 찾으러 다녔다.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 안심이 됐다.
그런데 차에 치인 사람은 아주머니 혼자가 아니었다. 차 옆에 아주머니 한 분이 더 쓰러져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의식이 없는지 쓰러진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특별히 외상은 없는 것 같은데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다.
가슴이 꽉 막혀왔다. 어떻게 해야 되지? “도와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아주머니를 가슴에 안고 난 소리를 질렀다. 뒤따라오던 차들은 멈칫거리며 옆으로 비켜 갈뿐 누구 한 사람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야지.’하며 나 자신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나 잘못 눌러가며 가까스로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119에 구조 신고를 하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5분 여 동안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골목길에 혼자 버려진 아이의 심정이 그랬을까? 막막하고 무섭고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 아주머니들은 왜 여기에 있었던 거야?’
쓰러진 아주머니를 안고 우산으로 비를 막으며 119 구급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119 구급차가 와서 아주머니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을 보고 난 후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
우선 경찰서에 사고 신고를 한 후 경찰이 현장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았다. 현장 사진과 차 상태를 보니 아마도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쓰고 무단 횡단하는 것을 비 오는 밤이라 잘 보이지가 않아 사고가 났던 것 같았다.
경찰서에서 나오면서 우선 아내에게 전화로 사고 소식을 전하고 가까운 선배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새파랗게 질린 아내와 선배가 함께 병원으로 찾아왔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아무 일 없을 거야. 빨리 달리지도 않았는데 많이 다치기야 했겠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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