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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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운 아내 (하)/김형남 (천안시 신부동)
아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만 해도 부모님은 “첫딸은 재산밑천”이라며 기뻐하셨다. 사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을 바라셨다. 내가 외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내에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으셨다. 물론 아내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시부모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워했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 딸을 낳고 나서였다. 아내는 둘째 딸을 낳을 때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임신 기간 중에도 몹시 힘겨워했던 아내는 그런 만큼 둘째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아쉬운 마음에는 시부모님의 기대에 대한 부담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내 앞에서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첫딸 때보다 아쉬워하는 마음은 아무래도 더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둘째 딸 출산 이후 아내는 시 부모님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몸이 자주 아프면서 명절 때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시댁에 가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한 두 번이라면 몰라도 그 횟수가 늘면서 어머님께서 이따금씩 불편한 마음을 비치셨다. 아무 말씀이 없던 아버지께서도 “건강 잃으면서 그렇게 일하면 무엇 하느냐”며 꾸지람을 하셨다.
실제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내 건강에 대해 상당히 염려를 하고 계셨다. 욕심이 많고 무엇이든 완벽해야 하는 아내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이 컸다. 아버지의 꾸지람도 그런 차원에서였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부모님의 말씀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서라기보다는 아들 손자를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여겼다. 건강해야 아이를 더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부모님이 하고 있다고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들을 원한 건 아내였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친오빠의 두 아들을 부러워했다. 아내는 오빠에게 “우리 하나씩 바꾸자”는 우스개 소리를 자주 했다. 아내의 그 말이 농담만은 아니라는 것을 난 알 수 있었고, 아내는 “셋째를 갖자”며 아들을 낳고 싶다는 속내를 비쳤다. 내 부모님 보다는 정작 아내가 아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훨씬 심했던 것이다.

광덕사에 다녀 온 뒤 아내는 이런 얘기를 꺼내며 내게 처음으로 부모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감정을 다스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그렇게 쉽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아프면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몸이 아프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내가 얼마나 내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이제는 주변도 돌아보면서 여유있게 살고 싶어. 세상 모든 거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거든.”
그러면서 아내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서 모아놓은 스님들의 법문을 보여주었다. 스님 법문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아내는 자신의 병이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데서 오는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차츰차츰 건강을 회복한 아내는 전과는 달리 시간을 내서 절에 가려고 노력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함께 절에 가기도 하고, 여행을 가서도 인근의 절을 찾아가 기쁜 마음으로 보시를 하곤 했다. 이따금씩 장모님과 함께 절에 가기도 하고, 경전도 읽기 시작했다.
학교생활도 달라졌다. 무조건 욕심을 내기 보다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만 실행에 옮겼고, 남보다 앞서가려고도,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집착도 덜했다. 무조건 기대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처한 상황에 맞게 눈높이를 맞췄다.
그렇게 편안한 날들을 보낸 지 2년이 지난 올해 7월 갑자기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아버지께는 암이라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했다.
토요일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온 아내는 병실을 떠나지 못했다. 살이 뼈에 붙어 있을 정도로 야윈 시아버지를 두고 병실을 나서지 못하는 아내에게 나는 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내의 간호가 극진해서인지 아버지는 다소간 회복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7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지를 아산의 한 사찰 납골당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 때까지도 아내는 며느리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머니와 누나를 위로하면서 장례를 무사히 치르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49재를 치른 뒤 아내는 그동안 감춰두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버님께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어. 나 그게 너무도 마음이 아파. 건강 잘 챙기라는 아버님 꾸지람을 서운하게 생각하고 오해하면서 그 때부터 몇 년간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마다 못마땅해 했었어. 그런데 2년 전 몸이 아팠을 때 엄마 생각을 하면서 느꼈어, 당신 부모님도 우리 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거라는 걸. 그동안 말은 안했지만 나 당신 부모님 정말 미웠어. 하지만 기도하면서 그 마음 다 버렸어. 그런데 지금까지 아버님께 용서를 빌지 못했어.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니 용서를 빌지 못한 것이 왜 이리 마음에 남는지….”
아내는 2년 전 몸이 아프고 난 뒤 마음속으로는 부모님께 잘못을 빌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런 아내가 고마웠다. 사소한 오해로 몇 년간을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만 우리는 보통 그렇게 아옹다옹하며 세상을 산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임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세상과 사람과 화해한다는 것이, 세상과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아내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부모님 유골을 절에 모신 것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불교 신도인 이유도 있고, 나 역시 불교신도 흉내나 내는 정도에 불과한 처지지만 그래도 절에 모시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불교신도가 돼 보려고 한다. 2년 전 불교에 진심으로 귀의하면서부터 완전히 달라진 아내를 스승이자 목표로 삼을 생각이다. 그토록 버리지 못했던 욕심을 어느 한 순간에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불교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49재가 끝났으니, 이제 가족들과 사찰 여행을 다녀 볼 작정이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고 싶다. (끝)
2006-09-23 오전 10: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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