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며 아내가 운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시아버지와의 세상 인연을 끊기가 어려웠던가 보다. 화장터에서도 애써 울음을 감췄던 아내였다. 하지만 정작 절에 아버지 유골을 모시고 재를 지내면서 아내는 무너져 내렸다.
아내의 야윈 모습이 안쓰러웠다. 시아버지에 대한 아내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슬픔의 눈물만은 아닌 듯 했다.
아내의 시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평범했었다. 때로는 서운하고, 때로는 고맙고, 때로는 안타까운 어떤 며느리든 시아버지에게 가지고 있을 법한 그런 기억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음을 안 것은 아버지 49재를 지낸 그 날이었다. 아내가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12년 전 결혼할 때만 해도 아내는 통통한 편이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꽤 만족해 하셨다. 늘 건강이 최고라고 하셨던 두 분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우리 집 며느리 되려면 건강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곤 했다.
중학교 교사인 아내는 욕심이 많은 편이다. 뭐든지 1등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런 성격 탓에 교사들 간의 경쟁에서도 늘 앞서 있었고, 학교도 아내를 꽤나 아꼈다. 아내가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교장 선생님부터 나서서 걱정을 해주곤 했다.
“적당히 쉬면서 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듣는 횟수가 늘었지만 아내는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끝’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동분서주했다.
심지어는 방학 때도 하루도 쉬지 않고 재교육이다, 교양강좌다 하면서 몸을 그냥 두지 않았다.
아이들에 대한 욕심도 지나쳤다. 자식에 대한 욕심이야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면 몰라도 아내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붙잡고 공부를 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아무리 건강한 몸이라도 10년 동안 혹사시켰으니 온전할 리가 없었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마르기 시작했고 덩달아 신경도 예민해졌다. 자연히 집안 식구들도 덩달아 눈치를 살펴야 했다. 아내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몸이 편치 않으니 다른 사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아내는 몸져누워버렸다. 신경성 위염과 식도염이 겹쳤고 신경도 쇠약해졌다는 병원의 처방을 받았다. 별다른 증상은 없기 때문에 며칠 푹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하지만 의사의 말과는 달리 아내의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집안일마저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이 없어지면서 처갓집 어른들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보양식을 해오셨지만 아내는 그마저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소위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안정과 휴식, 그리고 영양섭취가 필요하다는 말 외에는 특별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결국 11살 9살짜리 초등학생 두 딸 아이는 엄마 대신 살림을 해야 했고, 나 역시 집안일과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한달쯤 흘렀을까, 아내가 갑자기 절엘 가고 싶다고 했다. 정신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던 아내가 갑자기 절엘 가자고 한 것이다. 아내 집안이 불교였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내는 장모님을 따라 절에 몇 번 다닌 것 외에는 특별히 절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절에 가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래!”
아내는 처형에게도 같이 절엘 가자고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처형과 아내와 함께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광덕사에 갔다. 광덕사는 처형이 자주 다니는 사찰이다.
처형은 아내에게 종종 광덕사 얘기를 하며 같이 가자고 권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는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는데 절에 갈 시간이 어딨어?” 하면서 뿌리치곤 했었다.
법당에 들어선 아내는 처형을 따라 절을 하기 시작했다. 절하는 아내의 모습은 매우 힘겨워 보였다. 삼배를 마친 아내는 법당에 앉아서 10여 분 동안 뚫어지게 부처님을 응시했다. 그러다니 갑자기 일어나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10배, 50배, 100배가 넘도록 아내는 절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와 처형은 몸에 무리가 간다며 아내를 만류했다. 하지만 아내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할게. 여기 오니까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두자. 같이 하면 더 힘이 되겠지’하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함께 절을 했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300배 정도를 했다. 아내의 거친 숨소리에 걱정은 됐지만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절에 다녀온 뒤로 아내는 거짓말처럼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온종일 죽 한 그릇 제대로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입맛을 잃었던 아내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마저도 먹지 못해 병을 다스리지 못했던 아내였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어. 나 대학입시 때 엄마가 절에 가셔서 기도를 많이 하셨는데, 나는 엄마한테 그럴 필요 없다고 했었거든. 그런데도 엄마는 밤새 기도를 하시고 집에 오신 적도 있어. 힘드실 텐데 그만 두시라고 말씀드리니까, 그 때 엄마는 대답 대신 나한테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편안하게 공부하라고 하셨어.”
아내는 장모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지 않아도 장모님에게 정이 많은 아내였다. 아내의 마음 한 구석엔 늘 장모님의 고생이 걸려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장모님 얘기를 하던 아내가 갑자기 시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얘기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시아버지에게 그토록 공손했던 아내. 하지만 시아버지에 대한 아내의 속마음은 달랐었다, 아프기 전까지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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