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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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火傷)에서 얻은 지혜 (하)/조대근 (부산 수영구 광안4동)
모든 모습 있는 것들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겠지만, 화상 입었던 내 피부들도 생로병사를 빠르게 겪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생로병사를 깊이있고 생동감 넘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매일 시간이 나면 디지털 카메라를 들이대고 상처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찍었다. 그러다보니 피부의 생로병사를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병에 걸리고 죽어가는 피부를 보면서 ‘혹시나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공부하는데 병마구니가 가장 큰 마구니라고 배웠지만 나에게 이번 화상은 병마구니라기보다는 어떻게 잘 받아들이고 처리해 나가는가 하는 지혜의 실험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전, 부산에서 처음으로 새말귀선원장 춘당 이황우 선생님의 법문을 듣고 금요법회와 토요정진에 이따금씩 참석하기 시작했고, 그때 참선요지라는 테이프와 다른 테이프를 구입했다.
1년 정도 부산에 있다가 서울에 올라와 생활할 즈음 무척 괴로운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춘당 선생님의 참선요지 설법 테이프를 길을 걸을 때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나 가리지 않고 들었다.
좋은 내용은 따로 메모를 해서 그 글귀를 가슴 앞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괴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읽었다. 그리고 백봉 선생님이 지으신 회심곡과 성도가를 프린트하여 호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꺼내 읽어보곤 하였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을 무렵, 피부가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없었는지 문드러져서 조금만 닿아도 찢어지고 그 밑으로 뻘건 피부가 드러났다. 혹 염증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걱정도 되고 불안하였던 순간이었다.
화상을 침으로 치료하겠다고 했을 때 양방 의사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감염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침을 놓으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했을 때 담당의사는 “침을 놓으려면 퇴원하세요!” 라며 불쾌한 표정을 보였다.
피부를 조심스럽게 대하면서 침 치료를 해왔는데, 찢어질까봐 섬세하게 다루어왔는데, 조금만 건드려도 허물어지듯이 벗겨지는 피부를 보니 겁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침을 맞은 상태에서 핀셋으로 상한 피부를 하나하나 걷어내고 하룻밤이 지난 다음 아는 의사선생님 소개로 외과에 들렀다. 제대로 치료되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외과의사는 상처를 보더니 아주 잘 치료되었다면서 소독을 해주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그렇게 며칠간 하였다. 붕대로 감으니까 좋은 점이 있었다. 그냥 붕대 없이 지낼 때는 화상상태가 그대로 보여서 조심스러운데 붕대를 감으니까 활동하기가 편해 조금 더 활동성이 보장되었다.
7월 21일 오전. 한의원 개원한지 꼭 10주년이 되는 날. 용맹정진 10여일 전인 그날부터 나는 보름간 그렇게 꼬박 누워서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계속 누워있는 경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후 붕대를 감고 절룩거리면서 방학 중인 아들의 어깨를 지팡이 삼아 시험적으로 한의원에 나가보았다. 가서 조금 앉아서 진료가 가능한지 시험을 해본 다음 집에 돌아왔다. 그 다음 다음날 출근을 시작하였다.
붕대를 감는다는 것이 그런 점에서는 외부의 상해예방에 좋은 방편 같다는 생각이 새삼스러웠다. 아프다고 아픈 것을 쳐다보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보다는 붕대에 의지하여 안 보이게 한 다음 다른 곳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좋아져 있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 화상부위는 전혀 표시가 없지는 않지만 정상피부와 다름없이 털도 나고 땀도 난다. 종종 가려워서 긁으면 피부가 붉어지지만 그것도 점점 없어질 것이고 몇 년이 지나면 피부는 거의 원상태를 회복할 것이다.
화상, 예기치 못한 사고였지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째,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나에게도 생기는구나!’ 그리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구나!’ 교통사고도 날 수 있고, 길 가다가 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안전사고도 당할 수 있고 등등. 어떤 일이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음을 실감하니 자연히 나를 낮추게 된다.
둘째는 화급한 일이 닥쳤을 때 이리할까 저리할까 판단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 당황하지 않고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지혜를 길러 놓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셋째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과 사고방식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늘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환자를 내 몸같이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화상을 입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화상을 입고 나서야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넷째는 “의사는 모름지기 환자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그렇게 배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그 말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 참으로 아픈 사람은 치맛바람 한 자락도 몸에 닿으면 소름이 끼친다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화상을 경험한 이후에는 환자의 발을 수건으로 덮어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됐다. 환자가 추워하는지 더워하는 지에 대해서도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은 내가 느낀 만큼 유지될 것이다.
내가 입은 화상은 고통과 불행보다는 오히려 편안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아마도 화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너그럽고 타인을 배려하는 습관을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왕삼매경론(寶王三昧經論)>의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교만해 지나니, 병으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부처님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화상이란 병고(病苦)를 이겨내면서 많은 배움을 얻게 된 데에는 춘당 선생님과 도반들, 가족의 도움이 컸다. 찜통더위 속에서 고생을 함께 했던 아내 원경과 아들 하연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끝)
2006-09-09 오전 10: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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