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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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火傷)에서 얻은 지혜 (중)/조대근 (부산 수영구 광안4동)
일주일 사이클의 생활은 매주 한차례씩의 설법과 철야정진을 반복하면서 그럭저럭 평온을 찾아간 듯하였으나, 일 년의 사이클에서는 여름 겨울 두 번의 용맹정진이 분수령이다.
새말귀선원에서는 매년 7월말과 12월말에 3박4일이나 4박5일간의 철야용맹정진을 한다. 그 용맹정진을 다녀오면 그 다음 한 달간은 마음이 깊이있게 침잠(沈潛)되어서 안정되나 한 달이 지나면 또 어느새 세상의 물이 들어서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러다가 또 용맹정진에 다녀오면 많이 안정되었다가 또 한 달여 지나면 파도가 넘실거리기를 몇 년을 계속하였다.
잠을 자지 않고 집중적으로 수행을 이어나가는 용맹정진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다 보면 그동안 알고 있거나 믿고 있던 것들이 참으로 좁은 소견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또 그 다음 용맹정진이 지나면 ‘그 전에 느꼈던 것이 부족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순간순간 느껴지는 수행의 희열감이나 조금씩 알게 되는 어떤 ‘알음알이’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매순간 아무런 집착없이 정진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다. 느낌에 집착하지 않고 정진하다보니 오히려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행의 맛’을 알고부터는 항상 용맹정진 기간이 기다려졌다. 용맹정진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니, 화상을 입었다고 해서 용맹정진을 빠질 수는 없었다. 물론 용맹정진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에 불과했다.
‘전체의 10%, 2도 화상’을 입고 응급실에 입원한 다음날 오전 9시경 처치실로 들어가서 처치 받으면서 하루 동안 감아두었던 붕대를 벗어버리고 소독을 하고 물집이 잡힌 곳은 가위로 상처를 내서 물을 빼낸 이후 거즈를 덮고서 다시 붕대를 감은 후 병실로 갔다.
병원에서는 하루에 한 번 소독을 하고 화상거즈를 발라주는 것과 링거 주사에 기타 약재를 투여하는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한의사로서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화상을 치료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내 몸을 실험삼아 침을 통한 화상치료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물집을 그대로 두고 붕대를 감지 않은 채 침으로 치료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위 사람들은 꽤나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집에 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화상을 입었을 당시에는 분명히 걸을 수 있었는데, 발목부위 화상이 심해서인지 발을 제대로 디딜 수가 없어 도반의 부축을 받아야만 했다.
4층에 있는 집까지도반에게 업혀서 올라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도 몸을 일으키면 피가 발목으로 몰려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집에 누워 있자니 좌절감이 밀려왔다. 좌선을 하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러니까 용맹정진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용맹정진 때 졸기도 하여 열심히 정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빠진 적은 없었는데 화상 때문에 빠지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눈물이 났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데….
그날부터 하루에 300대 정도씩 고슴도치처럼 온 다리에 침을 맞고 꼼짝도 못하고 하루 24시간을 누워 있었다.
루게릭 환자의 고통을 이해할 만 하였다. 발가락이 아파서 조금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되지 않았다. 잠자는 아내를 깨워서 “새끼발가락을 안쪽으로 조금만 움직여봐라.” “발뒤꿈치가 너무 아프니 조금만 주물러다오.” “너무 세게 한다. 약하게 해라” 등등 이것저것 요구했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도 못 틀고, 엉덩이는 짓눌려 아파오고 몸은 쑤시고, 잠은 잘 수도 없고…. 하루가 그렇게 긴 시간인지 처음으로 알게 됐다. 왜 그리 아침은 빨리 오지 않는지.
새벽녘에 지쳐서 조금 눈을 붙이고 오전에는 조금 나았다가 더워지면 기진맥진하여 있다가, 밤마다 고통 속에서 시달리다가 또 지쳐서 잠을 조금 자고 하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몇 해 전에 아버지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눕지도 못하고 벽에 등을 기댔다가 일으켜달라고 하셨다가 또 금방 힘이 빠져서 또 기대게 해달라고 하시다가, 또 일으켜 달라고 하시며 앞으로 구부려 기대다가 지쳐 주무시기를 2~3일 하다가 숨을 거두었던 기억이 새삼 났다.
내가 그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임종 전 고통을 알 것 같았다. 참으로 힘든 날을 보내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다. 돌아가시는 날도, 돌아가시고 일 년이 지나도록 이렇게까지 가슴 아픈 적은 없었다.
‘나도 언젠가는 죽게 될텐데, 죽음의 시절인연이 닿았을 때 과연 어떠한 마음을 갖게 될까?’
평소에 많이 닦아 놓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화상 부위에 처음 침을 놓을 때는 피부에 기운이 없어서인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색깔도 허옇게 탈색된 것 같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침을 맞아갈수록 피부에 기운이 돌아오고, 색깔도 검고 생기없던 것이 살아나기 시작하니까 침을 놓을 때 아프기 시작하였다.
화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화상 입은 사람의 피부가 징그럽겠지만, 직접 당해보고 매일 쳐다보고 사진을 찍어보고 하는 내 입장에서는 시커멓고 화색이 없던 피부가 붉은 색을 띠고 생기를 되찾는 모습이, 꼭 봄에 새싹이 돋아나는 듯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항생제나 진통제를 전혀 쓰지 않고 침으로만 치료하니까 침 한대 맞을 때마다 “아악!”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한 대 한 대 맞는 것이 그렇게 아플 수 없었다. 첫날에는 2백~3백대 정도 맞았어도 그렇게 아프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뒤에는 50여대 맞았는데도 아예 침을 맞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한의사인 내가 이 정도인데 나중에 다른 일반인이 화상을 나 정도로 입었을 경우에 침으로 치료를 해보자고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할까? 내가 엄살이 심한지도 모르겠지만. (계속)
2006-09-04 오전 10: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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