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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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닦은 복전 (하)/하용이 (한국은행 홍콩사무소장)
어머니는 아버지 사업이 번창하던 시절,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시며 불공을 올리셨다. 그때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절에 다니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을 안 것은 몇 십 년이 지난 뒤였다.
가세가 기울면서 아버지와 형제들은 모두 깊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별다른 내색 없이 절에 다니시며 불공을 올렸다. 가족들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고, 오히려 신앙심은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부산 동광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 덕수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던 나는 경기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살림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해야 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북한산 국영사에 금강경 보시를 하시는 등 아들 입시를 위해 정성을 쏟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나는 원하는 중학교에 무난히 입학하게 됐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그 때 그렇게 사찰에 보시를 할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굳은 신앙심으로 부처님 곁에 있었던 것은 ‘아들’이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면 자신보다 더 불심깊은 불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먼 훗날까지 내다보며 자식들을 부처님 제자로 만들기 위해 교육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몇 년이 지나면서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외상매출금 담보로 받아두셨던 부동산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주시고는 새 각오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셨다.
그 이후 나는 서울대학교 입시를 앞두게 되었고, 어머니는 관악산 연주암을 발이 닳도록 오르내리시며 중학교 입시 때처럼 아들을 위해 정성을 쏟으셨다.
한 번 발원을 하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밀고나가는 어머니의 신앙심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소다. 그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영사와 연주암에 오르내리셨던 어머니의 신심과 정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지금까지 신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과정에서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불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다 어머니의 지고지순한 신심 덕분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경기고등학교 1학년 재학당시 ‘룸비니’라는 재가신행단체의 고등학생부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고3때에는 대학입시 준비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아침마다 삼귀의를 꼭 열번씩 외고, 쉴 때나 틈날 때나, 공부로 지칠 때에도 삼귀의를 외며 마음을 다잡았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마치고 경영학과 학사편입시험과 대학원 경영학과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부터는 1년 동안 꼬박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금강경을 독송했다.
물론 룸비니 대학생부와 법도회 법회(매주 토요일)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런 중간 중간에 나태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공부에 별다른 진척이 느껴지지 않아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를 붙잡아 준 것은 바로 신심깊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었다.
룸비니와의 인연은 이렇게 해서 벌써 40년이 되어간다. 룸비니 고등부와 대학부 섭외부장, 고등부 향토찬양대회 지도사, 법도회장 등 안 해본 것 없이 모든 자리를 거치면서 기쁜 마음으로 신행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보람은 청담ㆍ성철ㆍ석주 스님 등 큰스님들과 양주동ㆍ서돈각ㆍ이기영ㆍ박종홍 박사와 서정주ㆍ고은 시인 등 당시 내로라하는 석학들을 가까이 하면서 부처님 법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88년 시작된 한국은행불교회와의 인연도 20년이 되었다. 얼떨결에 간사직을 맡게 되면서 매주 열리는 금요법회에 매번 다른 법사스님을 모시는 일로 늘 고민을 했다. 그렇게 17년을 간사직을 맡으며 수많은 스님들을 모셨는데, 모시는 스님들마다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이 끝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 법에 대한 갈증도 끝이 없었다.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차근차근 정리해보자는 마음이 생겼고, 봉은사 봉은불교대학 야간반에 다니면서 불교공부에 매달렸다.
여전히 부족하기는 했지만 공부한 덕에 조계종 포교사 자격도 얻게 됐고, 봉은사 청정공덕회 부회장이 되면서 봉은사에서의 신행도 이어졌다.
공부하면서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실천행’이다.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부처님 법을 사회에 회향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러던 차에 2005년 한국은행 연수원장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 한국은행 자원봉사회 회장까지 맡게 됐다. 은행에서 가까운 회현동 쪽방동네 이웃들을 매달 찾아가 함께 했으며, 무료급식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소년의 집 어린이들과 놀이공원 나들이를 하는 등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렇게 활동하면서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머리로만 부처님 법을 이해해왔던 것이 후회됐다.
작년 1월 여러 도반들의 요청으로 한국은행 불교회 회장을 맡게 되면서도 실천행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그래서 12월에 열린 한국은행 불교회 창립 20주년 기념법회에서 불자들의 정성을 모아 올해 건학 100주년을 맞은 동국대학교 불교병원에 노스님 치료를 위한 후원기금을 헌정하고, 그동안 한국은행 불교회를 위해 훌륭한 가르침을 내려주신 스님들의 군법당과 대웅전 등의 불사에도 적극 동참했다.

영광스럽고 즐거운 이런 모든 인연들은 모두 다 어머니의 불심과 삼보의 가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홍콩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닦아 놓으신 복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부처님 법을 따라야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하며, 오늘도 아침 해와 함께 태평산 사자정에 오른다. (끝)
2006-08-21 오전 11: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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