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오랫동안 말썽을 부리던 아랫니 하나를 뽑고 임플란트 시술을 받게 되면서 뜻하지 않게 1주일간의 묵언수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가 말을 건네면 눈으로 웃음 지어주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 끄떡이고, 조금은 불만족스러워도 입 움직이기가 어려워 그냥 조용히 있게 됐다.
또 식사할 때도 평상시의 왕성한 식욕 대신 두부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아주 조금 잘라 입을 살짝 벌리고 조용히 밀어넣는 행위를 하고 있노라면 평생 ‘분노’로 얼굴 붉힐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정숙한 여인네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달라진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직원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직원들이 “원 부장은 배가 너무 나왔어. 그래서 어디 예쁨 받겠어?” 라고 이야기를 걸어오면 처음엔 못들은 척 사무실을 나가고, 두 번째 또 그러면 상황을 봐서 “알았어요”하고 언성을 높이고는 그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었던 나였다.
하지만 본의 아닌 묵언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말에 악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군요”하고 웃으면서 넘어갔다. 그러자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후로 거친 말도 확연히 줄었다.
사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그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반응을 줄이고, 내 행동과 말에 대해 한 번 더 뒤돌아보는 정도 외에는.
그런데 이런 나의 말과 행동과 사고가 주위 사람들의 태도변화를 유발시켰고, 나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우연치 않은 내 태도변화가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아함경>에 나오는 “마음이 더러운 까닭에 중생이 더럽고 마음이 깨끗한 까닭에 중생이 깨끗하다. 마치 화가가 하얀 바탕 위에 여러 가지 채색으로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듯이 마음도 오온(五蘊)에 대한 무지로 말미암아 생사에 묶이고 오온에 대한 여실지(如實知)로 해탈을 얻는다”는 부처님 말씀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순수성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의 순수성에는 너무 관대하다. 자신은 순수하다는 전제아래 다른 사람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대하니 그 모든 마음이 얼굴과 행동 하나하나에 드러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뒤돌아보면 나는 엄마가 화난 이유를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내 아들이나 부모님이나 똑같이 소중하다. 물론 어른을 먼저 존중하고 배려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엄마에게 “힘드셨죠”라는 감사의 말씀보다는 엄마에게 따지듯이 아이의 상태를 물은 것이다. 엄마가 순간적으로 서운한 감정이 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엄마를 대하자니 엄마의 화를 받아낼 내 자존심에 상처가 생길까 무서워 오기가 생겼고, 엄마를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다. 자존심에 상처가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내 존재가 가벼워지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커다란 잘못이었다. 나는 내 존재 가치를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기준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됐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마음 없이 말을 하고 행동을 하니 그 마음이 말과 행동에 배어나오는 것이다.
이런 죄송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엄마에게 전해야 할까. 고민 고민 하던 차에 사무실에서 승진소식이 들려왔다.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랬니?” 하시면서 무뚝뚝하게 반응하실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자식사랑에 대한 그 마음을 의심하지 않기로 하고 연락을 드렸다.
그랬더니 엄마는 흥분된 목소리로 “수고했다”며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킬 뻔 했지만 열심히 평상시의 어조를 유지하며 그동안 여러모로 돌봐주셔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다. 누구나 했을지도 모를 말이지만 난생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용기를 내서 한 말이었다.
어머니는 “아니다,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고생이 많은데 기특하구나” 하셨다. 이때까지의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떠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승진했다는 사실보다 더 기쁘고 행복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 부모님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받았노라고 순수하게 행동으로 보여드리면 되는 걸, 왜 진작 못했을까.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스런 현실세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으로서 사성제를 제시하시고 처방의 가장 구체적 실천법으로 팔정도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처음 신행을 할 때는 하나도 어려운데 여덟 개는 무리다 싶어 정어(正語ㆍ바른 언어)와 정견(正見ㆍ바른 이해) 두 가지만 목표로 정하고 신행을 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실천하려고 하다보니 정사유(正思惟ㆍ바른 생각)도 필요하고 정업(正業ㆍ바른 행위), 정정진(正精進ㆍ바른 노력)도 필요했다. 정업을 위해선 정념(正念ㆍ바른 명상)과 정명(正命ㆍ바른 생활), 정정(正定ㆍ바른 집중)도 해야 했다.
물론 앞으로도 또 어떤 갈등이 생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갈등이 생기더라도 헤쳐 나갈 힘이 생겼다는 자신감이 있다. 직원들과 대화할 때는 가벼이 나를 표현하며 내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더러는 칭찬도 듣고 있다.
엄마는 직접적으로 말씀은 하시지 않지만 진심으로 내 마음을 이해해주시고, 또 너그러워진 딸을 어여삐 바라보고 계신다.
이 모든 것이 내 변화가 가져다 준 행복이다.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신행에 있어 마음은 중요하다. 하지만 마음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천이라는 것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수행은 의미가 없다고 배웠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천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자라면 마땅히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신행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하늘이 더욱 파랗게 느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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