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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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해야… (상)/원혜란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난 어려서부터 성격이 여리고 예민했다. 작은 일에 상처받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눈치를 보고), 잘못되지는 않을까 먼저 겁먹는 정말 스스로를 무던히도 괴롭히는 성격인 것이다.
커서 사회인이 되어 현재의 경찰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도 이런 나를 버려보고자 하는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자라면서 부모님께 대놓고 반항을 해본 적도, 말대꾸를 해본 적도 없고,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누구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표나게 화를 내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가끔 감정을 표출해보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지레 겁먹고 수그러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성격이 좋다고 칭찬해 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나에 대한 평가인 셈이다.
그런데 작년에 부서를 옮기면서 가정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보다 많은 경험을 위해 형사부에 지원한 것이다. 경찰이라는 조직에서 내 위치가 더 이상 막내가 아닌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중고참이 되면서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부라는 특수한 상황은 나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내 여리고 조용한 성격을 문제 삼았다. 경찰은 경찰다워야 하고 어느 부서에서든지 거뜬히 일을 해낼 자질이 있어야 진정한 경찰인데, 이런 내 성격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다.
처음 이 부서에 와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여러 사람에게 융화시키고자 했고 잘 되어간다는 생각도 했는데 오판이었다.
경찰근성이 있는 동료들은 서로가 충돌하는 경우가 잦다. 그런 동료들이 내성적인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자꾸 들으니 기분이 언짢아지고 오기가 생겼다.
이와 때를 같이해 집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내 엄마는 때로는 어떤 상처도 보듬어주는 비단 폭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특별한 이유없이 하늘 끝까지 올라간 철옹성처럼 고집스럽게 변하는 그런 분이다.
그날도 그랬다.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의 사정으로 엄마가 며칠 간 오후에 우리 집에 와 계실 때였는데, 퇴근 무렵 작은 아이가 열이 많이 나고 아프다는 전화를 하셨다. 서둘러 도착해보니 아직은 쌀쌀한 날씨인데 베란다 문이 열려있기에 아무 생각 없이 베란다 문을 먼저 닫고, 엄마에게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프길래 그래?”라고 물었는데, 그 순간 엄마가 갑자기 현관문을 박차가 나가버렸다. 몇 차례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영문이나 알자고 전화를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좋아하시는 치즈케이크를 사들고 가기도 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난 결혼 이후 처음으로 과거의 철옹성 앞에 대책없이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좌절감에 아이들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불편한 시간이 지속되면서 집 안팎으로 시달린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에 기대야 했고, 발길이 자연히 시경 경승실로 향하게 됐다.
지금도 시경 소속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청사에서 근무하지 않아서인지 모처럼의 방문이 낯설었다. 수행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데 대한 죄의식도 있고, 이렇게 어려울 때만(예전에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입원하셨을 때) 찾아와 기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감출 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경승실에 앉아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부처님을 바로 보고 있으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선배가 “오늘은 부처님께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주셨어!” 하시며 기뻐하시던 모습을 보고 ‘에이, 조금 오버하는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부처님은 그렇게 근엄해보일 수가 없었다.
청사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경승실에서 유리창 밖 경치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다시 부처님을 바라보았지만 근엄함은 여전했다. 부처님에게서 아무리 미소를 보려고 해도 미소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처님 미소를 찾다가 책꽂이에 있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정어(正語)와 망어(妄語)>라는 한국불교연구원장 정병조 교수가 쓴 책이었다.
불교에서는 유달리 말에 대한 금계조항이 많다며 서두를 시작한 책에서는 “입으로 불이(不二)를 말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동체대비를 실현하기는 어렵다, 묵언이 좋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정어가 되어야 하고 최악의 순간에도 악어(惡語)만이라도 피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 무작정 경승실을 찾았을 때는 ‘무작정 절이라도 하다보면 마음이 홀가분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뜻밖에도 고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한 지혜의 말씀을 듣게 됐다. 수시로 자신을 돌아보고 허물을 찾아내 참회하며 잘못된 길을 고쳐 나가는 노력이 行(실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그래! 묵언 수행은 형편상 어렵지만 정언(正言)과 정행(正行) 수행을 하면서 일상에서 이것을 실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짐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실천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바른 말을 하고자 부지런히 노력해보았지만 거친 말투의 버릇이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바르게 행동하자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지만 어느 순간 평상시 관성대로 행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경승실에서의 다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경승실에서 다짐을 한 직후 무슨 말을 하고 행동하는 순간 ‘지금 이 말과 행동이 적절한 것인가, 아무런 문제는 없는가’하고 자주 되묻곤 했는데, 어느덧 그런 되물음도 생활 속에 파묻혀버린 것이다.
그런 가운데 직장에서 직원들이 내가 한 말로 나를 공격한다면 그건 내가 한 말의 내용이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동료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논쟁을 벌여 상대방을 흥분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됐다.
비록 경승실에서의 다짐이 생활 속에 묻혀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사실 정어와 정행을 하겠다고 실천에 나서기 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말을 하기 전 ‘바른 말’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 생각하고 말을 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옳았다고 판단한 말이라도 조금 다르게 말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 말이 때에 따라서는 ‘바른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계속)
2006-07-22 오전 10: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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