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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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내려놓기 (하)/양경인 (서울시 중구 필동)
이런 순간순간을 세세하게 말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답답하기만 한데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언제나 묵묵히 들어만 주시는 스님은 어김없이 녹차 한 잔을 따라 주셨다.
“시간 나면 법당에 가서 절을 한번 해보세요. 거창하게 108배를 하라는 게 아니고 삼배만이라도 해보세요. 강요는 아니에요. 시간이 나면 하세요!”
차 한 잔을 더 권하며 하는 말씀이 내게 와닿곤 했다.
얼마 뒤 스님 말씀도 말씀이거니와 딱히 할 일도 없고, 잠깐 시간을 내어 법당에 들러 삼배를 하는데도 왜 절을 하는지, 절을 하는 내 모습마저도 초라하게 여겨졌다.
어김없이 발걸음은 스님이 계신 곳으로 향했다. 스님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며, 절은 해 보았냐고 물으시는데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또 나의 자학에 가까운 아만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식욕도 점점 잃어가고, 삶의 의욕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 서있을 이유를 상실해가는 나를 스님은 한없이 다독여 주셨다.
“법우님은 참 밝아요. 많은 사람들이 법우님 그런 모습을 좋아 한답니다. 예의가 바르고 인사성도 밝아서 요즘 사람 같지 않다는 칭찬이 자자해요.”
“칙칙한 색 말고 밝은 색 옷을 입으세요. 접어 입는 청바지가 발랄해 보이고 예쁘던데…. 그래요, 운동화 말고 구두도 신고 그러세요.”
어떤 말씀을 해주셔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모든 것이 아만인 것 같고, 스님께 구구절절 말씀드리는 내 모습마저도 싫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손가락하나 까딱하는 행동마저도 조심스러워지자, 먹는 것이 제대로 소화될 리 없는 나는 결국 집밖을 나설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그 누구도 간호해 주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누워 있자니 그 처량함이란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머릿속이 깜깜해지는 아찔함을 느끼고 있으니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을 한잔 마셔도 화장실은 끝없이 가야했다. 약조차 넘어가지 않고 먹은 것 없이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다 금새 지쳐서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 밤을 보내고 몸을 추스른 뒤 집을 나서는데 비온 뒤 맑게 갠 날마냥 깨끗한 공기가 들숨으로 들어왔다. 온 몸의 피부가 숨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면 조금 과장된 것이려나.
햇볕도 따사롭고 너무나 상쾌한 가운데, 목이 말라 편의점을 들어서는데 편의점 직원이 “어서 오십시오, 손님!”하고 반갑게 맞는다. 평소엔 거추장스런 형식적인 인사처럼 여겨졌는데,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순간 나도 모르게 “예,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물값을 치르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라는 인사에 손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이 달리 보이면서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사지 멀쩡하게 낳아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하며, 길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며,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 나름의 삶에, 역할에 충실하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길로 돈각 스님을 찾은 나는 오늘의 경험을 간증(?)하듯 풀어냈다. 그간 소원해졌던 기간 동안의 심경과 함께 밀린 숙제마냥 지난 것까지 모두 한숨에 말씀을 드리고 나니 스님이 웃으셨다. 그리고는 책꽂이 한 켠에 복사해둔 종이 한 장을 읽어 보라고 내미시는데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이었다.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 보살이라는 구도자의 이야기인데 그분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감사하다는 인사와 존귀한 부처님이 되실 분이라고 칭찬하며 다녔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비웃거나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을 모두 구제하고 본인도 부처님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신묘한 지혜 한량없어 모든 중생을 권장하며 인도하고 하늘 사람 용 귀신들의 공양함을 받았으며 이 부처님 열반하시고 법이 없어지려는 때에 한 보살이 있었으니 이름이 상불경 보살. 그 때에 있던 여러 대중들 법에 집착되었거늘 그 때 상불경 보살이 그들의 처소에 가서 이렇게 말하기를, 그대들 경멸하지 못하노니 그대들 도를 닦아서 모두 다 부처 되리라……상불경 보살 명을 마치매 수없는 부처님 만나 이 경전 말씀한 연고로 한량없는 복을 얻고 점점 공덕을 갖추어 부처의 도를 빨리 이루었나니 그 때의 상불경 보살은 지금의 내 몸이요, 그때 사부대중으로 법에 집착되었던 이들 상불경 보살이 말하기를 그대들 성불하리라 하매 그 말을 들은 인연으로 수 없는 부처님 만난 이는 지금 이 회중에 있는 500명 보살대중과 그밖에 사부대중인 우바새 우바이들 지금 나의 앞에서 법문 듣는 이들이라….”

게송의 내용은 이러했다. 그동안 강의시간이나, 절에서 수많은 법문들 속에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그동안 코웃음 치며, 윤리 도덕적인 이야기라 치부했던 부처님 전생 이야기들과 경전 글귀 하나하나가 너무도 감사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제야 겨우 글이 눈에 들어온다는 표현이 어울리며, 견문이 열린 순간이었다.
“법우님 법당에 다녀오셨어요? 그동안 절은 계속 하셨나요?” 순간 뜨끔하는 마음과 함께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법당으로 달려갔다. 법당에 들어서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절을 하는데 좌복에 머리가 닿는 순간 일어 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하심이구나! 절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이런 심정으로 머리를 낮추시는 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삼배를 하고, 또 삼배를 하고 얼마나 많이 절을 했는지도 모르게 계속 해서 절을 하고, 또 했다.
절을 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 스님은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 부처님 말씀이 내마음속에 들릴 때까지 기다리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짧지 않은 시간 스님과 함께 했지만 나에게 경전의 글귀나 부처님 이야기는 한 번도 들려주시지 않으셨다.
그 날이 계기가 돼 나는 요즘도 가끔 법당을 찾아 삼배를 하고 108배를 한다. 물론 그 일로 인해 내가 한 번에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 나쁜 생각과 아만에 빠지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고민하고, 맘이 상하면 욕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절을 하면서 이 모든 마음의 변화를 다스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비록 예전처럼 스님을 매일같이 찾아 뵙지는 않지만 오늘은 스님께 전화 한 통화 드려야겠다. (끝)
2006-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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