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 종합 > 기사보기
마음 내려놓기 (상)/양경인 (서울시 중구 필동)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조금 모자라고, 박지성 선수처럼 전 세계의 축구선수들에게 수비를 당할 만큼 뛰어난 축구실력을 지니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잘났다고 믿고 살아간다. 길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아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일 것이다. 혹자는 “무슨 말이냐, 너는 못나고, 어리석고, 뭐하나 잘 하는 것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라고 항의를 해올지 모르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길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내게 돌을 던지며 손가락질하고 욕을 한다면 누가 그걸 고스란히 받아줄 수 있겠는가? “나는 저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사람이며, 돌을 맞아도 싸다”라고 자위하겠는가? 가슴에 손을 얹고 아무리 되뇌어 봐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왜 저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하는지, 왜 돌팔매질을 당해야하는지 도저히 이해는커녕 받아들일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이며, 고등학교 불자 연합회, 파라미타 활동에 이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졸업까지. 불자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감투는 다 써봤다고, 스스로가 엘리트 불자라 자부하며 살았다.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대 인도에서부터 유래된 종교, 깨달음의 종교, 여래장, 유식, 진리, 업과 윤회 등등 수많은 단편지식으로 짜깁기한 말들로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이래저래 10년에 걸쳐 들은 말들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부질없는 허울이고, 껍데기라는 사실을 깨닫긴 했지만 말이다.
하루는 친구가 밥을 먹다가 머리가 아찔할 만큼 충격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넌 너무 아만이 가득해, 넌 지금 ‘감히 내가 누군데 날 함부로 대하냐’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얼마나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는지. 아니라고 대꾸하는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갈라져 나오고 있었다. 급기야 내가 언제 그랬냐고, 자기 합리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게 여겨지든지.
언젠가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내려가는 여학생들의 요란한 구두 뒷굽 소리와 분명히 어깨를 부딪치고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도 무심히 지나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유독 맘이 많이 상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직접 그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친구를 만날 때는 험한 표현을 써가며, 교양이 없다는 둥, 개념이 없다는 말을 무심히 내뱉었다. 그런 말을 거침없이 하는 내게, 항상 지켜봐온 친구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친구의 말을 딱 자르지 못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여겨졌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들, 온 동네 친척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자란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것도 없고, 내 것이 아닌 게 없었다. 특히나 외아들을 두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큰 손녀에 대한 사랑은 누가보아도 눈에 넣어도 아플 것이 없는 손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한다. 모내기 준비로 한참 분주하신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새로 산 원피스를 자랑하기 위해 논두렁을 뛰어가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풀이 가득한 강가 논두렁에는 흑염소 무리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내가 몹시 거슬렸나보다. “할아버지 새 옷 입었어요!”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염소 뿔에 받힌 나는 물이 질펀한 논에 곤두박질쳤다. 입이며, 코, 얼굴에 가득한 흙을 닦으며 고개를 들고 보니 진풍경이 펼쳐졌다. 저 멀리서 단걸음에 달려오신 할아버지가 염소 뿔을 양손으로 잡고는 논바닥에 내팽개 치시는 게 아닌가. 하도 놀라고 어안이 벙벙해서 아픔도 잊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염소는 그날이 제삿날이 되었고, 여동생의 배꼽을 쪼아서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난 닭도 그날 밥상 위에 올랐다.
감히 나를 건드리는 건 동물이든 사람이든 할아버지가 가만히 두질 않으셨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완전한 울타리 안에서 나밖에 모르며 자랐고, 내 가족, 내 사람들만 똘똘 묶어서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는 성곽을 만들며 살아온 것이다. 마치 그 성의 주인인 양….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돈각 스님을 찾아가 뵙고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하루의 일과와 일상적인 생활 이야기, 못마땅한 이야기, 화난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고 있었다.
“아니, 스님이 왜 저래요?”
“절에 절하러 오지 자식 자랑하러 왔나요?”
“불교공부 얼마나 했다고 아는 척인지 모르겠어요”
“내가 곧 부처라는데 불상에 소원 빌기에 바쁜 무식한 사람들이에요.”
하루에도 수 만 가지의 자만과 오만, 무시와 치부로 가득한 생각들이 머릿속, 마음속을 헤매고 돌아다녔다. 그 모든 말들을 여과 없이 스님께 전달하고 나면 일단 내가 편안해지니, 스님이 듣기에 불편하시지 않을까 헤아릴 틈도 없이 터져 나왔다.
스님은 과연 모르고 계셨을까? 어째서 한마디 말씀도 안 하시고 가만히 듣고만 계셨을까? 무엇보다 스님께 이 마음을 모두 들켰다는 게 더없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사소한 일에 너무도 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침 출근 시간 붐비는 지하철을 탈 때만 해도 그렇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한 지하철에서 어떻게든 그 지하철을 타야 출근을 하는 사람들은 온몸을 밀치고 타게 마련이고, 나도 그 틈에 섞일 수 밖에 없음에도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지하철을 내릴 때까지 양옆, 앞뒤로 달라붙는 다른 사람들의 체온, 짧은 소매 아래로 닿는 맨 살의 느낌, 숨소리 등등 심지어는 앞에 서있는 사람의 머리카락 스침마저도 뱀과 같은 소름이 끼치곤 했다. 피치 못할 사정에 어떤 의도도 없이 부대낄 수밖에 없는 다른 사람들의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도저히 참지 못해 나는 다시 돈각 스님을 찾아 상담실로 향했고, 내 어린 시절과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져 있는 내 모습이 친구의 말대로 아만 덩어리로 여겨지는 이 솔직한 심정도 맘속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내 모든 것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영화 ‘홍반장’을 보면 주인공이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마을 대로를 지나는 장면이 있다. 나 또한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는 잘해야 하는 것이며, 아침식사는 하셨는지, 날씨는 덥지 않은지, 일일이 여쭈어 가며 길을 지나간다. 이렇게 늘 해오는 인사는 나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모습임에도 이제는 아만의 한 단면으로 여겨져, 더 이상 사람들과 눈도 마주칠 수 없고 대표로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일도 힘들어졌다. 어깨를 반듯이 하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걷는 것마저도, 큰 소리를 내어 웃는 것도 모두 조심스럽고, 맘 편히 숨쉬기도 힘들었다. (계속)
2006-06-28
 
 
   
   
2026. 6.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