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이 되었을 때 선원에 계신 회장 보살님께서 부산에서 초보자 반이 열린다고 말해 주어서 저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산 안국사에는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첫 날 스님께서 저에게 “이번에도 답을 찾지 못하면 화두 공부를 포기한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미 두달이나 먼저 화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설마 이번에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보다 늦게 답을 찾지는 않겠지 생각했습니다.
부산에서의 공부는 무미건조했습니다. 하루 종일 화두 의심은 지속되었고 괴로운 기운들도 잦아들었습니다. 또한 몸도 가벼워져서 식사량만 늘어났습니다. 방심하지 않고 종일 참구하였지만 답은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초심자 반이 중반으로 넘어갈 즈음 뉴질랜드에서 온 보살님은 지붕이 무너질 정도로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한참을 통곡한 후에는 혼절해서 벽에 기대어 있다가 다시 통곡을 하곤 쓰러졌습니다. 2일간은 공양도 거의 하지 못했고 공양하러 가서도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날 점검을 받기 위해 스님께 삼배를 드리는 데 그 보살님처럼 가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자신을 낮추어서 예를 올리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밤에 잠깐씩 와서 공부한 거사님도 모두 점검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항아리에 자라 한 마리가 있는데 무럭무럭 자라면 어느 순간에 항아리가 깨질 것이니 그 때까지 정진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주에 서울에서 다시 초보자 반이 열려 서울로 올라 왔습니다. 6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서울에서의 초보자 반도 소득 없이 지나갔습니다. 스님께서는 “팽이가 빨리 돌면 돌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져보면 엄청나게 빨리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되도록 풀무질을 하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제가 들고 있었던 화두 의심이 그런 상태였습니다. 거칠었던 화두 의심이 순일해지고 흐름도 아주 커져서 이제는 어느 쪽을 향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없어지고 그냥 작용만 하였습니다.
서울에서의 초보자 반이 끝날 무렵 저는 선원 사무실에 이야기 하고 또 밤샘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참하는 인원이 적어 선원에서 하지는 못하고 안국동에 있는 스님 처소로 장소를 옮겨 밤샘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장재일 법회날 회장 보살님이 저를 보더니 “이젠 작은 문제들은 일상생활 하면서 틈틈이 공부해서 해결하라”고 말씀하시고 오후에 스님 처소로 저와 같이 공부하시던 무업 거사를 불렀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경전 공부를 했는지를 물어보셨고 이후에 꾸준히 공부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후 사법시험 결과를 기다리면서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를 다시 읽었는데, 책의 구절 중에서 ‘동정일여’ ‘화두’ ‘의심덩어리’라는 낱말의 뜻을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두 참구하기 전에는 없었으나 화두 참구 과정에서 생긴 맑고 차분하며 신령스러운 기운들이 ‘화두 의심덩어리’인 줄도 알았습니다. 그리고 화두 의심이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의 경지를 넘어 은산철벽을 투과해야만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화두의심이 들리면서 선지식들의 법문을 듣는 귀가 열려, 체험을 바탕으로 법문하는 스님과 경전 공부를 통해 법문하는 스님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화두의심이 성성하게 들렸지만 잠만 자면 화두 의심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화두 의심이 꿈속에서도 들릴까 고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자 꿈속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흰색 기운들이 온 몸을 휘감고 돌아다니면서 빛을 내다가 사라지는 현상이 몇 차례 왔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선원 상담란에 글을 올리자 “화두 공부중에 나타나는 좋은 현상의 하나이나 그것에 매달리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치자 그 뒤론 역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4년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 선원장 초청법회를 통해 저는 제 공부가 어느 단계에 왔는지, 가야할 길이 얼마나 먼지를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붓다뉴스, 용화선원, 해운정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선지식들의 법문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간화선 수행에 대해 일부에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 수행법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간화선 수행법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맑고 차분하며 신령스러운 기운 속에서 하루하루 생활하게 되자 웬만한 외부 자극에 대해서는 마음이 외부로 뛰쳐나가지 않았습니다. 설사 뛰쳐나가더라도 금방 알아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마지막으로 절과 경전공부의 중요성도 느꼈습니다. 야생마를 길들이려면 먼저 긴 고삐를 만들어 나무 말뚝에 연결해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날뛰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질이 순해집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안장을 얹고 말 등에 올라타서 훈련을 시킬 수 있고 또한 멀리까지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참선도 같은 이치인 것 같습니다. 시대 흐름이 빨라짐에 따라 사람의 심성도 거칠고 날뛰는 기운 역시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물결이 잦아들어야 물속의 달을 볼 수 있듯이 이런 날뛰는 기운들이 어느 정도 잦아들어야만 비로소 내 안의 달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경전 공부를 통해 부처님 법이 무엇인지, 조사 스님들이 왜 ‘이 뭣고’ ‘무’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는지에 대해서도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신심이 있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조사 스님들이 왜 저렇게 논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했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되면서 마음공부의 씨앗을 스스로 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선지식이란 비를 만나면서 비로소 싹을 틔우기 시작합니다. 약간의 화두 공부 경험을 통해 지식과 생각의 양만큼 번뇌 망상도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화두 참구 중에 제가 제 꾀에 속아서 귀신굴에서 허우적거리는 때, 저 스스로는 그런 사실을 도저히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마치 제가 제 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저는 약 석달간에 걸쳐 화두 참구를 하면서 제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면 스님께 물어보고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스님이 아무리 해결책을 제시하더라도 스님을 믿지 못하면 결국 공부는 제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결국 경전 공부를 통해 부처님 법이 얼마나 심오한지 알아야 하고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것이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임을 알아야 부처님, 조사스님, 선지식에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형성된 믿음은 화두 공부 중에 부딪치는 경계들을 헤치고 나갈 원동력이 됩니다. 따라서 화두공부는 불교에 대한, 선지식에 대한 믿음이 첫째라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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