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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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일구(向上一句)’ 이룰때까지 (상)/이만덕 (서울 은평구 대조동)
내가 간화선 수행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여름입니다. 당시 사법고시 2차시험을 치르고 쉬고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조계종 안국선원에서 참선공부를 해 오고 있었던 누님이 시험이 끝난 나를 선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원에 가서 초심자 법문을 들었습니다. 당시 스님께서는 “사회윤리로 보면 선은 진리이고 악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선도 진리이고 악도 진리입니다. 불교란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광명을 밝히기 위한 수승한 수행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화두공부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심자 법문을 듣고 약 한 달 후 안국선원에서 간화선 초보자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초보자 과정에 약 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저는 빠르면 5일, 길어도 10일이면 간화선 초보자 과정을 마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빨리 이 과정을 끝내고 합격자 발표 때까지 여행을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첫날 스님께서 화두를 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검지 손가락을 굽혔다 폈다 하시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검지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이 뭣고)?”
이에 일부가 “불성입니다. 마음입니다. 제 손입니다” 등등의 답변을 하였습니다. 이에 스님께서는 “손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면 죽은 송장도 손이 있는데, 죽은 송장은 왜 손을 움직이지 못합니까? 불성, 마음이란 것은 여러분이 배워서 안 것이지 답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이 뭣고?)을 던졌으니 여러분은 답만 찾으시면 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화두(이 뭣고?)가 들려 있으니 ‘이 뭣고’를 외우지 말고 검지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만 찾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시간 정도의 법문이 끝나고 각자 참선공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답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 지 난감하였습니다. 가장 먼저 저를 괴롭혔던 것은 ‘내가 정말로 화두를 들고 있는가?’였습니다. 통상 무엇을 들고 있다면 손으로 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화두를 받기 전이나 받고 난 다음이나 제겐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정말로 화두를 들고 있는지 의심이 갔습니다. 또 하나 어렵게 느껴진 것은 ‘어떻게 답을 찾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수학 문제는 공식에 따라 풀면 되고 사람사이의 갈등이라면 찾아가서 원만한 합의점을 찾으면 문제가 풀리는데, 스님께서 “머리는 없는 셈 치고 온몸으로 답을 찾으라”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둘째 날 역시 한시간 정도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자리에 앉아 답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날 망상을 많이 피워서인지 둘째 날은 제가 과거에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생각들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셋째 날 스님께서는 법문을 통해 “오늘부터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편으론 공부를 방해하는 일들도 나타납니다. 화두 공부를 하다가 의심을 놓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두 참구 3일째가 되니까 저는 좀 초초해지기 시작했고 답을 빨리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신경이 예민해 졌습니다. 첫 날 스님께서 화두를 주시던 장면을 생각하면서 무엇이 검지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 것일까를 떠올려 보고, 다시 답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화두 참구 5일째에 접어들자 공부 중에 경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옆방으로 나가서 스님께 점검을 받고 초심자 반을 빠져 나갔습니다.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공부를 마치고 나가자 더욱 분심이 생겼습니다. 그래 이 공부를 하려면 대분심, 대의심, 대신심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더 열심히 해보자고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일정이 하루밖에 안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아 있는 10여명은 선원 사무실에 이야기하고 밤을 새서 화두를 참구하기로 하였습니다. 화두를 참구하다가 끊어지면 다시 밤새워 화두를 들기위해 노력했지만, 답은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스님의 마지막 점검을 기다리는데, 저는 절망감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제 옆에서 화두 공부를 하였던 노 보살님은 조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경계를 체험하고 나갔고, 저보다 훨씬 적게 공부하였던 다른 분들도 점검을 받아 나갔는데, 가장 열심히 참구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던 제가 답도 찾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패잔병처럼 앉아 있으니 누님 보기도 민망하였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스님과 도반이 없는 초보자 반에서 혼자 공부를 계속하였습니다. 화두를 들고 공부하다가 조금만 방심하거나 딴 생각을 하면 화두가 사라졌습니다. 3~4시간 이상을 놓치지 않고 참구해 왔는데 갑자기 사라지면 기운이 쑥 빠져버립니다. 왜냐하면 또 처음부터 화두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님이 안 계시는 선원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정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제 자신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화두가 들려 의심이 지속되는 시간이 늘어갔지만 이에 비례해서 알 수 없는 두려운 감정들이 몰려왔습니다. 좌복에 앉아서 답을 찾는데 온 힘을 집중하면 화두의심이 슬며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나타난 화두 의심은 어린 아이 숨소리처럼 가늘고 힘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망상을 피우거나 몸을 크게 움직이면 화두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 말씀처럼 화장실 갈 때도 화두 의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 살금살금 걸어갔고 물 한 모금 마실 때에도 화두 의심이 도망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마셨습니다. 조심스럽게 가만히 참구해 나가자 화두 의심이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져 갔습니다. 화두 의심이 갈수록 가늘어지고 약하게 감지되어 끊어 질듯 해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화두의심이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지자, 화두 의심에 수반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군대에서 한여름에 방독면을 쓰고 행군할 때 느꼈던, 호흡이 거칠어지고 속이 울렁울렁하고 답답한 기운들이 화두 의심에 수반해서 제 안에서 몰려 나왔습니다. 스님께서는 화두 공부 중에 잘못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화두를 들고 화두 의심이 지속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괴롭고 답답한 기운들도 덩달아 날뛰었습니다. 찾으려는 답은 나오지 않고 엉뚱하게 괴롭히는 기운들로 인한 불안감만 커져 가져 결국 저는 혼자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생각하고 부산 안국사로 내려가기로 하였습니다. (계속)
200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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