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배! 이것은 108배라는 행위에 대한 또 다른 자기 자신의 낮춤이고 반성이며, 미래에 대한 자신과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작은 성취감을 주었습니다. 사실 만 배를 하기 위해 여러 번의 108배를 시작했을 때, 튼튼한 체력이 아니었던 나의 몸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마음속의 갈등만을 자아냈었죠.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적인 만 배에 얽매여 이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만 배를 하기 전과 한 후 과연 무슨 변화가 있을까? 법당을 찾았을 때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그냥 3배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등의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108배 속에서 그 의문은 허리를 숙이고 다리를 굽히고 등을 구부리며 몸에 땀을 흘리면서 하나씩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등산 전과 후에 갖는 느낌에서 오는 의문점을 등산하면서 하나씩 풀어가듯이 말입니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경지(?)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개의 중간 목표와 수많은 작은 목표를 세웁니다. 작은 목표 하나하나의 성취는 중간 목표 달성에 힘이 되고, 중간 목표의 성취는 큰 목표에 다가서게 만듭니다. 앞으로 나의 마음속 큰 버팀목(목표)이 되어줄 불교에 있어서 만 배는 큰 목표에 대한 작은 목표의 첫 성공적이 된 셈이었지요.
국군수도통합병원과 의왕사에서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중대로 복귀한 후, 일주일에 한 번 중대에서 종교행사가 이루어질 때면, 나는 중대원들에게 불교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픔만큼 성숙한다고 했던가요? 나의 생각과 말은 이전보다 넓고 깊어진 상태로, 보이지 않고 들을 수 없는 부처님 말씀의 전달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불경 구절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은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 속에서 서로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풀어가며 풍성한 대화를 해나갔습니다. 이렇게 불교행사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으로 인해, 중대 종교행사 중에서 가장 잘 진행되어 중대장님은 목탁을 구해 오셔서 우리의 사기를 더욱 진작시켜주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군 제대하는 날, 나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낫게 해준 의왕사로 다시 찾아갔습니다.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 만 배를 할 당시 한 법우가 선물한 염주를 꺼내들고, 부처님을 향해 108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법사님과 군종병을 만나 감사와 중대 복귀 후의 생활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 의왕사에는 나와 같은 심신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으며 그분들은 나에게 하던 것처럼 똑같이 그들에게도 정신적인 힘과 의욕을 주기 위해 노력과 정성을 쏟고 있었습니다.
제대 후, 나는 중국유학을 가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1999년 인천국제공항 건설현장에서 4개월간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아침7시부터 오후6까지 근무, 그리고 나는 짧은 시간에 돈을 더 벌기위해 야간 근무 할 일이 생기면 자원해 일주일에 2~3일씩 밤늦게까지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며칠 일한 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손과 몸이 움직이지 않아 마비가 된 줄 알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일 아침마다 계속돼서 일어날 땐 누운 상태로 먼저 눈으로 몸을 내려다보며, 손발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마비된 양손을 들어 서로 비빈 후 풀어지면 그 손으로 몸을 주무르고 일어났습니다. 이때 손과 몸에 항상 와 닿는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염주였습니다. 현장 일을 할 때는 몸에 지닐 수 없지만 잠자기 전 항상 손목과 목에 차며 무사히 하루를 마친 것에 대한 감사함과 바르고 강인한 정신을 계속 간직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잠을 청했던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건설현장과 학원에서의 일을 통해 마련된 비용으로 그렇게 바라던 1년간의 중국유학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직장생활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을 향해 큰 포부를 안고 시작했던 중국에서의 직장생활은 현실이라는 벽 앞에 부딪쳤습니다. 연로해가는 부모님과 가정을 꾸리는 것 등을 생각하니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여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공무원 준비. 기존에 몇 년간 준비하고 해왔던 모든 것을 중단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던 마음은 괴롭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시간이 더 많이 남았기에 그리고 공무원을 하더라도 중국어는 꼭 능력을 살려서 발휘를 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중국어에 대한 열정은 마음속 한 쪽으로 접어두었습니다.
늦게까지 했던 공부, 짧은 직장생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취업시험 준비, 높은 경쟁률, 적지 않은 나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부모님 건강 등 나의 머릿속에는 어느새 조바심이 일기 시작해 학원도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개월간의 번잡한 생각을 접고 들어간 곳이 보은 속리산에 자리 잡은 고시원이었습니다. 비좁은 책상과 책장, 이불, 옷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나의 작고도 큰 공간. 누구의 방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녁엔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에 불안함이 엄습했고 나를 안정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가져온 짐을 풀어서 물건들을 확인했습니다. 라디오도 핸드폰도 아니었습니다. 둥글둥글하게 연결된 작은 것이 손에 잡혔습니다. 염주! 어딘가를 가면 항상 품고 다니던 염주! 만 배를 같이 했던 그것!
몇 개월이 지나서 그 염주는 효력을 다했는지 나의 큰 방과 뻥 뚫린 마음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인 듯 했습니다. 어느 날, 책을 사기 위해 대전 집에 들려 심심해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경상남도 고성 청광화백의 달마대사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급한 나는 곧 고시원으로 돌아와서 사온 책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봐서 지나쳤던 그 달마대사가 생각이 났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에겐 그 때 눈에 보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어렵게 그 그림을 구해 고시원으로 돌아와 방안의 벽 3곳과 방문에 붙였습니다. 모든 악귀들과 잡념이 내 방안으로 못 들어오도록 막아달라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어느 때보다 안정되었고 잡념으로 많은 시간을 빼앗긴 예전과는 달리 공부의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이후, 나는 합격했습니다. 현재 나는 가족들과 함께 부처님 품안에서 행복을 가꾸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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