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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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불교 (상)/변종원 (대전시 서구 내동)
어머니 뜻 따라 귀의했지만 주말엔 ‘허전’
약한 몸과 마음으로 군 입대해 병원 신세
매일 108배 3회씩…목표했던 만배 달성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이런 생각하잖아요. 과연 산타 할아버지는 진짜 있을까? 어렸을 때 나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많이 모이고 먹을 것을 주는 교회에 다니며 산타를 믿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다니며 나는 ‘믿음’을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새겨 넣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절에 다니는 어머니와 종교적 마찰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가 내게 있어 큰 변화의 전환점이었지요. 어머니는 내게 ‘한 집안에서 하나의 종교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된다’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내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교회에서도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가장 큰 효도라고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큰 반발 없이 어머니의 말에 따르게 됐습니다. 종교보다도 부모님의 뜻을 따른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았습니다. 막상 어머니의 말을 듣기로는 했지만, 그간 어느 하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내게 그것을 버리고, 새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일 먼저, 주말이 되면 다가오는 허전한 느낌은 한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마음고생도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믿음과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 그러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갈등하는 내 마음을 다잡았지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된 일을 하는 어머니. 1년 365일 중 휴일도 없이 일하는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음력 초하룻날 절에 가는 정성에 내 스스로 감복을 했습니다. 어렵게 절에 가는 날을 경건하게 보내기 위해 며칠 전부터 가족들에게 고기와 달걀 등을 삼가게 하시는 모습, 그리고 매일 저녁 지친 몸으로 염주를 돌리며 불경을 조금이나마 보면서 기도하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누나들의 마음도 돌려놓았습니다. ‘만약 동생이 대학시험에 떨어지면 너희들 책임이야!’ 하면서 일요일에 열심히 교회에 다니던 큰누나를 타일렀습니다. 어머니의 무서운 엄포(?) 때문이었을까요? 누나들은 무슨 핑계로도 주말에 외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외출을 하더라도 교회 예배가 끝나는 오후에서야 가능했고, 그것도 만나는 사람에 대해 확답을 해주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불협화음이 있었겠지만, 바깥으로 나타나는 그 일치된 믿음에 대한 기도 때문인지 나는 한 번에 대학시험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큰누나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종원아! 그 당시 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운 줄, 넌 모를 거야. 엄마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어”라고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 형식적인 수준의 불교에 대한 나의 믿음이 군입대를 하면서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즉, 군대시절부터 마음의 한 복판에 불교가 조금씩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처음 훈련소에서의 종교행사로써 개신교, 천주교, 불교 이렇게 나누어 했습니다. 이중에서 제일 많이 참석하는 곳은 개신교. 그 이유는 종교행사를 일주일에 두 번했고 갈 때마다 훈련병들이 좋아하는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주교(성당)는 일주일 한 번 행사에 한 번씩 주었고, 불교(절)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서인지 처음 참석인원의 절반이 두 번째 때는 안 가게 되어 그곳 법사님을 놀라게 해 인솔조교에게 물어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참석인원은 갈수록 줄어들었으나 불교참석인원은 두 번째 인원 그대로 끝까지 유지가 되어 결국은 평생 간직하게 될 염주와 법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소를 떠나 2년간의 군생활을 하게 될 부대로 가서는 훈련소 생활과는 달리 동병상련을 하게 될 동기가 없고 힘든 생활로 인해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불교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체력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군입대 전까지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아 체력이 안 좋은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 보호를 해 주던 부모님의 그늘은 너무 커서 군입대를 한 나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딱딱한 군화와 군복을 입고 엄격한 군대생활을 했으니 심신은 그야말로 괴로웠습니다.
탈영도 몇 번씩이나 생각 했었지요. 그렇게 단련되지 않은 몸 중에서 특히 발이 문제였습니다. 몸을 지탱하는 것이 역부족이었는지, 서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통증이 생겼습니다. 결국 군대생활 1년 만에 서울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생활은 지친 심신과 불교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는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나는 육체적으로 체력단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하나의 큰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병원 안에 자리 잡은 의왕사(醫王寺)였습니다.
의왕사를 처음 찾았을 때, 병원 내에서도 산에 위치해 조용한 그 곳이 내 마음의 안정을 주었습니다. 스스럼없이 나는 부처님을 매일 찾아뵙기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지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습니다. 만 배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어느 날, 불교서적을 읽다가 만 배를 하면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구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108배씩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을 찾아 의왕사를 오게 되었고, 만 배를 다하기 전 부처님의 말씀을 만나 뵙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마음 자세도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매일 절을 찾으며 처음에는 나 하나만의 몸을 위해 절을 했으나, 나중에는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다 기원한 후 나를 마지막에 찾아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어머니도 절에 가셔서 이렇게 하시리라 생각이 들더군요.
만 배. 처음 이 단어는 내게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성철 스님이 당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3천배를 하게 한 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 많은 수의 절이 몸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니 만 배는 더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 배를 이삼일에 끝낸다는 생각은 없었고 108배에 의미를 두며 하나씩 한다는 마음, 꼭 만 배를 채우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자신을 비우고 생활 속의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해나갔습니다. 절을 한 지 며칠이 지나자 몸은 가벼워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으며 아픔의 고통에서 오는 침울한 얼굴에 미소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 배를 다한 후에는 법사님과 군종(법우)이 좋아 의왕사를 계속 찾게 되었습니다. (계속)
200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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