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따뜻한 위로 한 마디는 힘든 수감 생활에 든든한 힘이었습니다. ‘연비 자국을 보면서 이제 진정한 불제자가 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보라’는 아내의 말처럼, 부처님 법에 간절하게 의지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금강경>과 <관음경>을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독송했습니다.
그렇게 9년간의 수감생활은 내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나를 타락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 아상을 버리게 했습니다. ‘내가 제일이다’라는 오만한 생각, 지독하게 나를 옭아매던 그 아상을 벗어버리고나니, 세상이 달라보였습니다.
<금강경> 2상 ‘적멸분’에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 경의 말을 듣고 믿는 마음이 청정하면 우주와 인생의 참다운 모습, 즉 실상의 깨달음에 이른다”고요. 그리고 여래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을 베고 마디마디 사지를 찢겼지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기에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나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됐습니다. 내가 인연 따라 태어난 것부터가 인과의 산물이니, 그대로 ‘고통’이구나. 전생부터 업이 쌓이고 뭉쳐서 오늘의 내가 되었기에…. 그 원인을 알게 되니 속이 후련했습니다. 만약 이를 업보라고 괴로워만 한다면 한없이 괴롭겠지만, 그간 향락주의에 빠져있던 나를 버리는 수행과정으로 마음을 돌리니 현실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면 순간순간 자기 자신을 밝음으로 인도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까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나의 눈가를 순간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인과의 법칙도 사무치게 알게 됐습니다. 현실의 내 모습을 보면서 매사 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는 인과법칙. 새삼 느끼게 되면서 어두웠던 나의 삶이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법회를 열어주는 스님들의 인연에 감사했습니다. 어느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아무리 즐겁다 하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라”고요. 그 당부의 말씀을 하신 스님은 내게 “사람 되기 어렵고 정법 만나기 어렵고 부처되기 더더욱 어렵다”는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그것을 듣는 순간, 꿈을 깨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꿈이 꿈인 줄 모르는 까닭에 나 자신은 어리석음의 꿈에서 허둥지둥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했습니다. 흐릿하게 남은 내 팔뚝의 연비자국을 더듬었습니다.
28년 전에 오계를 받을 때 남은 연비자국. 계를 받으면서 남모르게 또 뜨겁게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다시 흘렸습니다.
‘그래, 지금부터 다시 부처님 법에 의지하자. 지난 세월 세웠던 법사가 되겠다는 원을 실현하자.’ 나는 이후, 옥중에서 불교통신대에 입학했고 불교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부처님의 경전을 읽고, 쓰며 외고…. 몸은 갇혀 있지만, 마음은 온 세상을 자유롭게 누볐습니다. 왜 이렇게 생각한줄 압니까? 시방삼세에 부처님이 계시고 있고, 그런 부처님의 마음이 바로 내 불성에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나약한 내 마음과 몸에 엄청난 힘이 됐습니다. 지금은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앞으로는 부처님처럼 살 거라는 자신감은 힘든 내게 든든한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매번 스스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공부하기 좋은 노른자 위에서 이 주옥보다 아름다운 부처님의 진리를 배우지 못한다면, 어리석음의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고. 스스로 화두처럼 놓지 않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런 마음공부 과정에서 바쁘신 와중에도 불구하고 매달 와 감로법문을 주시는 일봉 스님과 법사님들은 내 불교공부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늘 생각했습니다. ‘부처님 법은 무엇일까?’ 불서를 읽으면서 이런 믿음을 갖게 됐습니다.
‘불법은 일만 가지 맛이 나는 과일이요, 일만 가지 향이 나는 꽃이다. 우리는 그런 과일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요, 모든 농사 중에 가장 보람 있는 농사가 바로 불법 수행’이는 믿음이었습니다.
나의 일상생활이야말로 불법을 닦을 수 있는 연마제인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모름지기 수행자라면, 말이 말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되며 입을 열어 법을 이야기한다면, 그 말을 듣는 이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공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설하셨으니 말입니다.
진정한 불자가 되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너를 살리겠다는 그 마음. 그것이 자비의 참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사랑을 가지고 죽네 사네 야단들이지만, 사랑하기 이전에 내 아픔이요, 내 몸이요, 내 자리요 바로 나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안 한다’라는 언어가 붙을 수가 없는 그대로가 자비심이라는 것을 항상 가슴 속에 깊이 새겼습니다. 또 풀 한포기라도 버리지 않는 대비심을 키우면서 내가 예전에 세웠던 법사의 원을 실현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있습니다.
흙탕물에 빠져 본 사람은 자기가 겪어 보았으니까 다시 빠지지 않고 남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실천할 수 있지 않습니까? 더욱 분발 정진 수행하여 부끄러움 없는 불자로 태어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수의복을 입고 있지만, 이곳도 부처님 수행도량으로 생각하니 주옥보다 더 아름다운 불법을 배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번의 실수는 병가에 상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 무엇을 잘못해서 결과를 따진다고 했을 때, 실패하면 굉장히 망신스럽기도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번의 실패는 앞으로 더 잘하기 위한 연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수행이며 작은 묘목이 자라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려면 긴 시간에 허허벌판에서 비바람에 많은 매를 맞으며 성장한 나무는 더욱 튼튼하듯이, 아무리 힘겨운 수감생활일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단단한 금강석의 참 불자로 거듭 태어나리라 다짐합니다. (끝)

































.gif)
.jpg)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