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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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에 삽니다 (상)/조형숙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
나는 요즈음 음악 듣는 맛에 삽니다. 음악을 듣다가 흘러간 팝송이나 많이 알려진 노래라도 나오면 혼자 음악에 심취해 리듬에 내 몸을 맞추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얼마동안 음악에 빠져 지낼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의 경우로 본다면 3~ 4개월은 족히 그럴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아무리 좋아하던 것들도 약간은 시들해지기 마련이지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공소사는 예외인가 봅니다. 3개월이 아니라 3년째 다니고 있으니까요.
2002년 3월, 처음 수원 공소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 당시 나는 건강이 극도로 안 좋아 외출도 거의 못하고 집에서 불교서적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답답하게 지내고 있을 무렵, 한 도반이 ‘공소사’라는 사찰에 함께 가자고 권유했습니다. 처음에는 영통에서 꽤 멀다고 느껴지는 공소사에 어떤 기대도 없이 ‘한번 가 볼까’ 하는 호기심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먹고 들렀던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정기법회와 청아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느낌을 이야기하자면 스님의 목소리는 너무 작고 차분해서 졸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막 시작한 신도님들의 돌림법회는 매우 이색적이면서 활기차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저 자리에 앉아서 법문을 하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혼자 장담 아닌 장담을 했습니다. 몇 개월을 덤덤히 다니면서 나에게는 생소한 말들인 ‘관(觀)’ ‘주인공자리에 믿고 맡겨라’ ‘마음공부’ ‘수행’ 등에 대해서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도, 책을 뒤져서 알아볼 마음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하라고 하시는 스님의 말씀에도 ‘뭘 물어야 하지?’ 하면서 약간은 멍청히 그리고 묵묵히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를 따져서 알아내어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나 의문도 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다닌 것이 오히려 마음공부 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비록 조금 더디고 얻은 것은 적었겠지만 말입니다.
내 자신의 경우, 너무 많이 알고 받아들인 것을 내 것으로 체득하지 못해 마음이 복잡해지기 보다는 한 가지씩 반복해서 들으면서 ‘그렇구나, 그렇지’ 하며 생활에 적용해 본 것이 더 실질적이었습니다. 또한 이상하리만치 스님의 말씀과 공양 후 다담시간에 나누는 이야기에 대해 어떤 반감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를 위한 법문 같았고, 일상적인 생활의 대화조차도 재미있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수긍이 갔던 것입니다. 큰 목소리로 힘주어서 주장자를 내리치면서 어려운 한문을 섞어가며 하시는 설법보다 작은 소리로 조근 조근 말씀해 주시는 것이 더 살갑게 다가오고 핵심을 꿰뚫어서 내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겸손하고 고분고분하며 평온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연기를 꽤나 잘 한 것이겠지요. 내 겉모습은 그럴지 몰라도 나의 내부는 항상 ‘화’와 ‘분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항시 불안해하고 신경질이 많았고 주위를 불만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특히 식구들에 대해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며 남과 비교하면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내 마음도 편하지 않고 식구들도 힘이 들었지요. 언제나 우리 가정이 엉망으로 뒤틀려 가는 것을 남편이나 자식 탓으로만 돌리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스님께서는 그런 내 마음을 보신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비추어 보라는 뜻으로 ‘조일심(照一心)’이라는 법명을 지어 주셨으니까요.
“하루에 몇 초라도 의지적, 의식적으로 내면을 살펴보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자기 내면의 생각, 감정, 두려움, 의문 등을 주인공에게 믿고 맡겨라.”
스님께서는 자기 자신 특히 마음을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주변은 자기 마음의 거울이라고도 했습니다. 단순히 자기 자신을 보는 것으로 무슨 해결책이 나오며 변화가 있을까? 엉켜있는 가정을 위해서는 누군가가 위력을 발휘해야 할 텐데, 자기 자신을 보라고?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절실한 마음으로 무조건 해 보았습니다.
사실 내면에 집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살피기보다는 상대를 보면서 상대를 판단, 분별하며 살던 습이 더 익숙하므로 자신의 내면 관찰은 너무 생소했지요.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 처음엔 ‘촬영’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카메라맨이 되면서 동시에 카메라속의 주인공이 되는 1인 2역의 역할을 한다고 상상하면서 내 일거수일투족을 찍는 것이지요.
발걸음 옮기는 것, 밥 먹는 모습, 음식 준비하는 손놀림 등 하루에 단 1분일지라도 집중해 보았습니다. 자신을 찍는다고는 하나 처음엔 거의 잊어버리고 지나가다가 나중에는 서서히 순간순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동만을 집중해서 보다보니 어느 순간 올라오는 감정, 생각까지 알아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아주 한순간 올라오는 걱정, 두려움, 불안, 욕심 등을 살피다가도 곧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일상 속에 묻혀버려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조금씩 변화가 왔습니다.
내 자신을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거의 습에 의한 행동과 말이 반사작용처럼 튀어 나오곤 했는데 올라오는 생각을 알게 되고 상대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내 감정의 변화를 눈치 채게 되니 ‘아 이런 생각을 하네, 이런 면도 있었네’ 하면서 반응이 느껴지고 조금씩 조절도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내 자신을 찍으니 재미있으면서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마음까지 올라오는 것을 알게 되더군요. 그러니 주변을 보는 내 시야도 좁은 틀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면서 식구들과의 관계도 자연히 부드러워지고.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고 제가 녹여가야 하는 업의 인연은 더 많은 듯 했습니다.(계속)
200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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