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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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의 기억 (하)/곽기섭 (서울 중랑구 면목동)
공양 후 법당에 모여 각진 스님으로부터 송광사 사찰안내를 받은 후 개금불사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반야심경 사경을 선물 받았다. 개금불사는 나 자신이 보고 싶다고 하여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련회에서 인연이 되었기에 너무 감격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관음전에서는 또다시 놀라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수련회 참여자들이 강인한 정신력과 지극한 불심의 마음을 가지고 같은 목표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야심경 사경에 열중하는 그 에너지는 어디서 분출이 되고 있었을까? 거의 바닥났을 거라 생각했던 각자의 몸속에서 용솟음치며 올라오던 그 힘을 충분히 느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반야심경 사경과 하나가 되어 종착역에 모두가 도착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한없이 신기한 마음과 이 해도해도 싫증나지 않는 불법이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어느덧 저녁예불 시간. 조계종 포교원장이자 당시 완주 송광사 주지이신 도영 스님이 자리하셨다. 저녁 예불 후 바로 참선시간이 있었지만 일정이 잠시 변경되어 관음전에서 도영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날 마침 부산불교대학 보살님, 거사님들이 오셔서 함께 참석하게 된 자리여서 예를 갖췄다. 이 시간, 스님께서는 봉은사청년회에서 참석한 우리 모두를 칭찬해 주셨다. 칭찬받으려고 했던 수련회 일정이 아니었지만 그 말씀에 힘이 났다. 도영 스님께서는 어려운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시자마자 자청해서 법문을 해주셨고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법문 중 “청년 불자가 많아야 불교의 미래가 밝다”라는 말씀과 함께 “서울 한복판에 있어 힘없는 젊은 불자라 생각했는데 수련회 모습을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시며 다시 한번 칭찬을 해주셨다. 포교도 열심히 하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사실 예전보다는 생각차이도 많이 생겼겠지만 다른 일상에 더 많이 치우치게 되어 안타까웠던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부산불교대학 보살님과 거사님들도 수련중인 우리가 대견스러운 듯 힘을 더해 주셨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길다면 길었던 시간, 일정은 벌써 마지막 날로 접어들고 있었다. 새벽예불 시간이 되자 비가오고 흐렸던 전날보다 날씨가 맑아져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진 수계법회. 다시 한 번 주지 도영스님의 크신 한 생각에 감사하여 몸둘바를 모를 상황이었다. 새벽예불 후 손수 다시 수계법회를 보아주시기 위해 금란가사장삼으로 갈아입으시고 관음전에 나오셨을 때는 수련회를 맞은 청년들에 대한 내면 깊은 사랑의 마음이 보였다. 언제 또 이런 큰 예로써 스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 수계를 받고 일일이 이름과 법명을 호명하여 수계증을 나눠 주시는 모습에서 맑고 깨끗하고 따스한 스님의 마음을 절실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수계에서 내가 받은 법명은 ‘진성(眞性)’. 마음에 꼭 든다. 수계도 여러 번 받았고 법명도 몇 개 있지만 그때그때 새로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앞으로는 이번에 다시 발심을 하여 참가한 이번 수련회에서 받은 법명을 쓰기로 했다.
뒤이어진 각진 스님과의 대화시간. 뽕잎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담소를 나눌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체험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힘든 건 둘째 치고 좋은 경험을 얻었다는 것이 참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다만 중간 중간 묵언을 통해 미흡했던 부분을 반성하기는 했다.
이제 막바지로 접어드는 시간. 법당을 나와 주지 도영 스님께 인사를 올리러 갔다가 또 한 잔, 차를 대접받고 좋은 말씀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되어 나오는 길. 서울 올라가는데 늦는다면서 시골 할아버지처럼 일일이 챙겨주시던 도영 스님의 모습, 문밖까지 나오시면서 얼마나 인사를 받아주시고 손을 잡아주시던지 자식이 고향을 찾았다가 떠나는 양 가슴이 뭉클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아쉬움과 다음을 기약하며 전원 이동차량에 탑승했지만 한쪽 마음은 송광사에 남겨두었다.
수련회는 끝이 나고 시간이 지난 지금 회상을 해보았지만 현재 또한 많은 어려움과 답답한 마음들이 있다. 하지만 그때 맛본 성취욕과 뿌듯함, 자신감, 희망, 또 다른 나 자신을 찾기 위한 도전이 이미 시작되어 가슴속에 항시 남아돌고 또 돌고 있어서 모든 일상의 생활 속에서 불교에서 배운 것과 접목시켜 실천하고 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지만 안하는 것 보다는 부딪치고 행하는 쪽이 옳은 것 같다.
무엇이든 안 된다는 생각과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내세우고 그때에 느낀 가슴 뛰는 마음을 항시 간직하고 당황하지 않아도 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좋은 결정을 내렸던 나쁜 결정을 내렸던 하나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니 좋은 것, 나쁜 것이 없음을 알았고 이미 결정 된 그때 그 한 가지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의 근본과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니 그 안에 해답이 있었다. 물론 모든 부분에 있어서 다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건 그렇게 노력하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다.
지금 현재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완벽하지도 않고 집착도 있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부모님의 연을 따라 태어났지만 ‘나는 누구인가’라는 것과 ‘나는 왜 여기에 왔는가’를 계속해서 수행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과 법우들 혹은 도반들과 함께 크기가 무한대인 거대한 마음의 그릇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이 마음을 언제든지 꺼내어 닥친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매사에 노력하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면서 수행을 하다보면 마음의 여유가 절로 생길 것이 확실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에서 나 자신을 믿고 불교를 접해야 한다. 체험으로 느낀 나의 그 마음자리는 항상 내가 원하는 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둘이 아닌 하나이다. 마음은 죄가 없다. ‘참나’이자 주인공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돕고 있는 쪽은 나쁜 것, 좋은 것을 구분 짓지 않는다. 아니 구분 짓는 것조차 무엇인지도 모른다. 결정된 쪽에 따라와서 힘이 되어줄 뿐이다. 그러니 행을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집착하지 말며 바른 결정에는 망설임이 없고, 또한 결과에는 후회가 없어야 한다. 정말 수행은 수행을 계속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어느 정도 쌓이다보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내 자신이 발심하여 행을 하면 안 되는 것이 없음도 느낄 수 있다. 나 자신도 아직 많이 부족하고 수행의 연속이지만 그렇게 그 도리를 알 수 있게 내안에 있는 그 녀석은 꼭 나를 끝까지 이끌고 갈 것임이 분명하다.
끝으로 모든 것에 고맙고 감사해하며 향내음 가득한 수련회의 기억을 기억 속에 잘 싸둔다. (끝)
200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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