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하지 않고 집착 않는 불교에 매력
내안의 ‘그 무엇’ 찾기 위해 수련회 참가
1080배 통해 마음의 중요성 깨달아
때는 불기 2548년, 그러니까 2004년 7월 여름 수련회.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그 시간을 회고한다. 그때 느꼈던 내 감동을 도반들과 나누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안양 한마음선원 본원에 다녔다. 그곳에서 어린이회, 학생회,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수련회도 많이 참여할 수 있었다. 수련회는 언제나 참석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사회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참가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니 일상에서 잠시나마 나 자신의 마음을 찾는 것조차 그랬다. 일상에 밀리듯 시간은 벌써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참 열심이었는데….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데….
내가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불자집안에서 자랐다는 점도 있었지만 불교라는 것 자체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누구나 수행을 하면 된다는 것,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을 오르려면 내 자신이 움직여서 발을 딛고 올라가야 정상을 밟듯, 불교는 늘 내 곁에 함께 하고 있었다. 산·도심 어느 사찰에 가던지 잠시라도 법당에 앉아 향냄새를 맡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노라면 목욕을 하고 나온 듯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 탓만 하고 지내던 어느 날 다시 마음을 다잡고서 주변을 살피던 중 회사에서 가까운 도심 속 사찰 서울 봉은사와 인연이 닿았다. 그 후부터는 청년회 법회에 참석하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수련회에 참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금요일 저녁,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해 다시 수련회를 위해 준비해두었던 짐을 들고 봉은사로 향했다. 그런데 창 밖에선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무렵 경남 진주에서 열렸던 ‘제23차 전국불교청년대회’ 때 법우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태풍 ‘민들레’도 이겨냈던 모습이 떠올라서다.
봉은사 경내 법왕루에 도착해보니 벌써 몇몇 법우들이 도착해 있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면서 운치도 느끼며 아직 도착하지 못한 법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예정된 시간보다 일정이 지연이 되고 있었다.
수련회에 타고 갈 버스는 이미 도착하여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법회는 참석했지만 수련회는 처음 참가하는 법우들도 있었고 서로 얼굴을 모르는 법우들도 있어서 잠시나마 수련회를 함께 하게 된 도반으로 인사를 나눴다. 설렘과 긴장을 안고 있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천으로 인해 예상보다는 많은 법우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버스는 힘차게 출발했다. 이윽고 일반도로를 지나 톨게이트 진입, 고속도로를 거쳐 수련회 장소인 종남산 송광사를 얼마두지 않은 곳에서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탑승하고 있던 버스가 역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도반들 모두 순간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대처해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이라서 차량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도착 직전, 마음을 느슨히 하지 말라고 되새겨주는 암시인 듯했다.
수련회에 앞서 나름대로의 계획은 본래 그 자리에 있던 초심을 재가동하여 내안의 나를 찾아서 되새겨보고 내면에 있는 자신과의 시간 및 대화 그리고 좋고 나쁨을 떠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 부딪치는 모든 것, 관련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공유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수련회 장소인 전북 완주의 종남산 송광사. 고요한 새벽에 우리는 관음전으로 이동했다, 짐을 내려두고 나니 도량석 도는 소리가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예불을 보기위해 대웅전에 들어서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웅장함과 자태가 말로 표현하기 아까울 정도로 장엄스러운 삼불좌상이 모셔져 있었다. 가운데 석가모니불, 오른쪽 아미타불, 왼쪽이 약사불로 기억된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쉬고 있던 대지와 만물, 작은 풀벌레들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세 부처님과 함께, 깨어나는 만물과 함께 편안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새벽예불이 끝나고 수련회 기간 동안 지도 법사를 맡아주실 송광사 총무 각진 스님의 소개와 앞으로의 일정을 듣고 바로 참선에 들었다. 온갖 새소리와 맑은 공기, 풀냄새와 함께하는 <금강경> 독경. 그렇게 수련회는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수련회 내내 사회와 집전을 맡게 됐다. 따로 준비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하고 싶었기에 더 진지하게 임했다.
새벽예불을 보고 나서 입제식을 할 수 있었다. 아침공양, 도량 청소 등도 모두 마쳤다. 어느덧 모두가 약간의 긴장과 설렘임을 안고 기다렸던 대망의 1080배 시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힘들어하는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기 시작했다. 한 번에 절을 많이 하는 것은 좀 오랜만의 일이어서 걱정했지만 모두가 자신을 너무나도 열심히 찾아가고 있었다. 각자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절을 하는 횟수가 한배, 한배 늘어날 때 마다 나 자신을 낮추고 절을 시작 할 때의 다른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땀은 쉼 없이 흐르고 옷까지 적시고 있어 짜증 한 번 날만한데도 오히려 편해지는 마음. 이것이 육체와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고 말 그대로 ‘육체는 보이는 것이고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하나이기에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하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절을 하면서 안 되게 하는 것도 되게 하는 것도, 상대와 통하고 상대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임을 알았다.
드디어 마지막 108배를 남기고는 108참회기도문으로서 마무리. 1080배 참회가 끝났다. 법우들의 마음이 모여 하나가 되었던 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서로가 서로에게 놀라워하고 있었다. 절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과정 보다는 그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 먼저였던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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