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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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부처님 보살핌/서용칠 (서울 노원구 상계동)
“자랑스런 군불자 여러분들에게 꼭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군대에 있는 동안 ‘큰일났네’ ‘큰일났다’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마세요. 이 말은 여러분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배우자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날 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가는 일을 겪었을 때나 쓰는 말입니다. 사소한 일에 큰일났다고 하면 이것이 행동으로 옮겨져서 정말로 큰일을 낼 수 있으니 그 마음부터 먹지 말라는 것이지요.”
원당 호국비호사에서 외람되이 사자좌에 올라 젊은 병사들 앞에서 설법을 하고 의식을 행하며 군포교에 뛰어든지도 어느새 5년. 매월 두 곳의 군법당에 3~4번씩 찾아 나섰더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전법의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나는 사실 개신교 재단에서 설립한 중ㆍ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30대까지 세상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믿으며 살아야 하는 줄 알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고 보복을 당할까 무서워했다.
그러던 중 시절인연이 닿아 불교방송을 만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택시를 타고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가던 중 들려온 법음이 내게 한 줄기 충격으로 다가왔을 뿐.
나름대로 개신교 신자로,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도 그렇게 법음이 내 머릿속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불연이 깊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청강생처럼 매일매일 방송을 듣고, 불음을 들으며 책을 사 읽고 하였으나 아무래도 순서가 틀린 듯 했다. 어째 바다의 넓이만 재고 있을뿐 깊이는 모르고 있는듯 하여 체계적으로 교리를 배워보고 싶어진 것이다. 동산불교대학에 입학해 포교사 자격까지 얻게 된 후에는 부루나 존자의 뒤를 잇고자 군포교에 뜻을 두었다.
군포교에 매진하고 있던 2005년 9월이었다. 문득 100일기도가 하고 싶어 내 생전 처음 새벽 4시에 일어나 108배로 하루를 시작했다. 매일 108배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내 생애에서 그렇게 기쁜 나날도 없었다.
그렇게 군대에서, 법당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내가 ‘큰일났다’ 하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병사들에게 법문으로 강조한지 몇 주 후였던가, 나에겐 정말로 ‘큰일날 뻔’한 사건이 생겼다.
그 날은 우리 집 큰아들이 회사를 옮겨 계약서를 작성하고 새로운 직장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던 2005년 11월 1일이었다.
“여기는 창동 주차장인데 119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아들의 힘없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오더니 끊어지는 것이다. 다급히 불러보아도 다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온갖 불길한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제일 의문인 것이 ‘지금 이 시간에 회사에 있어야 되는데 왜 창동 주차장에 있는가’였다. 감기라도 걸려서 일찍 퇴근중인가? 그러나 구급차는 왜 불러달라는 것일까?
짧은 시간 동안 온갖 나쁜 생각이 스쳤지만 불길한 마음 간신히 억누르고 119에 전화해 위치와 차번호 그리고 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리고는 나도 허둥지둥 집 밖을 나와서는 창동역 주차장에 달려갔다. 곧장 관리사무실로 뛰어가 상황을 말하고 50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그 넓은 주차장에서 우리 아이의 차를 찾기 시작했다.
긴급 출동한 재난구조대원은 찾아봐도 없으니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것 아니냐며 이 근처에서 교통사고 났는지 수배 하고는 돌아가겠다고 하고, 직원들도 접촉사고나 사람들이 싸우거나 말다툼을 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고 했다. 참으로 난감하고 어떻게 판단을 내려 행동을 하여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좀 더 찾아보자면서 대원들을 설득했다.
바로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그 대원이 소리를 쳤다.
“엇, 아드님 차가 저기 있네요.”
대원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눈에 익은 우리 아이의 차가 있었다. 달려가 문을 확 열자 이름을 부르며 흔들어도 미동도 없이 운전석 의자가 반 넘게 제쳐있는 상태에서 반듯하게 누워있는 아들이 보였다.
휴대폰과 안경, 신발이 차 바닥에 굴러 떨어져있고 오른팔이 축 늘어뜨려져 있었다. 대원들이 달려들어 구급차에 옮겨 싣고 산소마스크를 채우고는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어둠이 깔린 대로변의 혼잡한 차 사이사이로 내달렸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라는 생각만 들었다. 도저히 추리가 되지 않고 내 처지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나의 업장이 이렇게 두터운 것일까 싶었다.
응급실에 누운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지나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깜빡이며 스치는데 아이가 “아버지 물 좀 주세요” 라고 했다. 이때의 감격, 눈물, 기쁨 어찌 필설로 이어지랴. 그때가 8시쯤 된 것 같다.
이날 아들은 새 직장에서 연봉과 근무기간을 계약하는 날이라 집에서 조금 일찍 나갔다. 차를 주차하고는 감기기운이 조금 있어 약 한 봉을 먹었는데 하도 피곤하고 졸려서 잠깐만 쉬고 가야지 하고는 의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시동을 껐단다.
밀폐된 공간, 내리쬐는 햇볕의 열기에 차안 온도가 오르고 산소도 부족한 상태에서 온몸이 마비된 상태로 10여 시간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있자니 눈뜰 기운도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더란다. 다시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이것이 꿈인가 잠결인가, 죽음과 삶이 왔다갔다 하는 찰나에 어디선가 맑고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휘익’하며 얼굴로 지나더란다. 그런데 휴대폰이 어떻게 손에 쥐여져 전화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아내는 아들을 부여잡고 “이 녀석아! 네가 나보다 먼저 가려했느냐”며 슬피 울었다. 나도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였다.

이제 불교에 입문한지 30년! 마을버스 삯 500원이 아까워 걸어 다니면서도 군법당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게, 아이들은 ‘우리 아버지 잘하면 광신도 되겠네’ 하면서 밉지 않게 놀려대곤 했다.
나는 아들이 살아난 것이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한다. 100일기도를 하고, 나름대로 군법당에 열심히 나갔기 때문에 아들이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뭐라해도 한줄기 바람이라는 형태로 관세음보살이 나투시어 내 아들을 살려주었다고 확신한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 삶 속에서 바로 내 앞에 희망이 있다면 뒤쪽에는 절망의 그림자가 있으며, 오른쪽에 삶이 있다면 왼쪽에는 죽음의 어두움이 있다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 만세!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고맙습니다. (끝)
2006-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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