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의 순리를 아는 지천명의 나이를 바로 목전에 두고 지난시간을 돌아봅니다. 40여년의 삶들이 마치 한편의 흑백영화처럼 찰나 간에 흘러갑니다.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이루었고 또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목적 없이 살고 기준 없이 살았기에 내 마음이 마치 갈대와 같이 이 바람에도 저 바람에도 속절없이 흔들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려다 보니 어린시절부터 십 수 년 어머님을 따라 절에 다녔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코흘리개로 아무 것도 모른 채,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만을 좇았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나름대로 경전도 읽고 불교 공부도 조금 하다 보니 불교를 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부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과연 무엇이 부처님이고 무엇이 불교인지 조차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는 그저 허식과 가식으로 가득차서 부처님과는 산보다도 높고 바다보다 깊은 높은 장벽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서 그간 몸만 여기저기로 따라다닌 꼴이니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현재 묶여있는 몸으로, 구치소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곳에도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그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부족하나마 펜을 들었습니다.
또 나의 글이 나와 같이 힘들고 지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다시 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광명정대한 부처님의 큰 가피를 만분의 일이나마 알리고 큰 은혜 입은 벅찬 마음을 가눌 길 없기에 글로써 큰 기쁨과 큰 가피 입음을 적고자 하나 글 솜씨 없음이 그저 한탄스럽기만 합니다.
나는 처와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둔 가정의 가장으로, 작은 운송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고 따뜻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3년 8월경,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어리석게도 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항변도 하고 싶었지만, 죄를 지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요. 사업체가 부도 처리 되면서 밀린 임금도 갚지 못했고, 나는 부채 때문에 ‘사기’죄로까지 처벌받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와 잘못은 나를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3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격리시켰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범법자가 되면서 우리 집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초상집이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렇게 똑똑하고 영민하던 큰 아들 녀석이, 빚쟁이들이 채무 채권 관계로 집으로 찾아와 날이면 날마다 행패와 난동을 부리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자폐 증세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인데, 자식가진 부모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유독, 첫째 아이라서 더욱 귀여워하고 믿음직스럽던 녀석이라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땅이 갈라지는 아픔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이 있다면 손이라도 잡고 안아라도 줄 텐데 수감된 죄인의 몸이라서 내손 하나 마음대로 못하는 마음에 하루 열두 번도 더 미칠 것 같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내 잘못을 속죄하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들을 원망하는 마음만 더욱더 커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서 황폐해져 갈 때쯤 우연히 이곳 구치소 불교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지푸라기 한 올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과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엇갈리게 나타났습니다.
교도소나 구치소에는 바쁜 와중에도 오셔서 불쌍하고 소외된 수감자들을 위해 봉사를 해주시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 날은 구룡사에 계시는 정우 스님께서 오셨습니다. 스님의 말씀 중에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열과 성을 다해서 간절히 바란다면 노력한 만큼 부처님께서는 큰 은혜와 자비를 베푸신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도 무엇인가를 위해서 노력하고 열과 성을 다하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물론 그 무엇인가는 바로 나 자신과 아픈 자식, 그리고 내 가정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12월경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 6시까지 <천수경>과 <금강경>, ‘예불대참회진언’을 차례로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절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같이 한방에서 잠을 자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그렇게 하면 그분들께 피해를 주는 것 같았기에 경만 읽게 되었습니다.
수감되어 있는 죄인의 몸으로 낮에는 규정되어 있는 일을 하고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낮에 지치고 고된 몸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날 때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나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어나서 경을 한줄한줄 읽어 가면 뜻은 고사하고 음도 제대로 다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많은 잡념으로 10초도 정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온갖 잡념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내고 나면 몸은 더욱더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인지도 모를 만큼 읽고 또 읽다보니 처음에는 잘 돌아가던 혀도 차츰차츰 굳어지면서 ‘어’ ‘어’ 하는 소리만 밖으로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입안과 혀에는 혓바늘이 돋아서 밥도 잘 못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발음은 불분명하고 시간은 더 들었지만 정신만은 점점 또렷또렷해졌습니다.
그러더니, 서서히 몸도 적응하여 가고 마음 또한 변하여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경을 읽다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면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지은 온갖 잘못들과 원망, 후회들이 흐르는 눈물 속으로 참회되어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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