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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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 제11회 신행수기 공모 수상작-총화종 총무원장상 / 김남기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지장행자의 길 가렵니다 (중)
성철 스님의 영결식이 끝나고 다비식장에 도착해 다비식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해인사에서 톨게이트까지 무려 8시간이나 지나서야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49재에는 저만 갔다 왔는데 성철 큰스님께서 꿈에 저의 집을 세 번이나 방문하셔서 추운 날씨에 가족이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수행을 열심히 하라고 말씀을 하시고는 가셨습니다.
어느 날 다시 제 꿈에 찾아오셨기에 제가 “큰스님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니 말을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큰스님께서 오신 김에 화두 하나만 내려 주시고 가십시오”하고 청을 드렸더니, 그것이 무에 어렵냐고 하시면서 “네 마음에 빛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라는 말을 화두로 삼아서 잊지 말고 기억했다가 참선공부 열심히 하라고 신신 당부를 하시더니 홀연히 가셨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큰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때 아내가 둘째 아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에 자신의 몸에 이상한 변화의 조짐을 느꼈는지 아내가 다시 한 번 병원을 다녀와야겠다고 하기에 이번에는 같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애도 임신 2개월이라고 하면서 먼저 진찰을 했던 그 의사선생님께서 기뻐하시면서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몇 번이고 말씀을 되뇌면서 저희 부부를 축하해 주셨습니다.
둘째가 세상에 나오던 날이 1995년 8월 4일 이었고 생애에 두 번째로 축복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 주었고 귀엽게 노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호사다마라고 할까요. 96년 3월경에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가업인 제재소에 새벽 1시 30분경 원인모를 화재가 났습니다. 당시 저희 네 식구는 깊은 잠에 빠져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는데 갓난아이인 둘째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에 제 아내가 잠에서 깨더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저를 깨우면서 밖을 내다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니 제재기계가 있고 나무를 쌓아놓은 공장 100여 평이 화마에 휩쓸려서 불길이 하늘을 향해서 치솟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다른 방에 자고 있는 큰아들을 깨워서 우리 네 식구는 밖으로 대피를 했고 소방차가 4대가 도착을 해서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700여 평의 마당은 폐허로 변했고 다행히 지장보살님을 모셔놓은 방과 안방은 화마를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더 다행인 것은 신혼부부가 수퍼마켓을 하면서 세를 들어 살고 있었고 매일 거기서 자면서 숙식을 했는데 마침 불이 나기 전날 친정에 가고 없어서 불행 중 다행으로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만약에 둘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 세 식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지도 모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그동안 자식을 더 낳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을 했는데 다행히도 부처님께서 이번에도 자식을 보내주셔서 우리 가족의 목숨을 구해주셨고 불법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으니 이 불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둘째에게 절을 하는 방법을 한 번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데도 불교텔레비전에서 예불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따라하더니 절을 제법 잘한다는 것입니다. 길에서 스님을 만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꼭 합장을 한답니다. 또 한 번은 팔공산 선본사 갓바위 약사여래 부처님을 친견하려고 입구에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 때가 4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의 손을 잡고 걸어 올라가서 절을 하고서 다시 걸어 내려왔답니다. 웬만한 아이들이라면 업어달라고 할 텐데 업어주려느냐고 물어봐도 괜찮다고 하면서 걸어서 왕복을 하니까 장모님과 처남 그리고 아내가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아마 전생에서부터 불법과의 인연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화마로 인해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낙담과 깊은 시름에 잠겨서 방황하고 있던 차에 이제껏 부처님께서 가피를 내려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 은혜에 보답을 하는 셈 치고 기도나 해보자고 하면서 그 날부터 지장기도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서 원주시에 있는 고찰 국형사로 향했습니다. 차로는 10분 거리이지만 기왕이면 걸어가면서 지장보살 정근을 하기로 하고 1시간가량 걸어서 절에 도착을 했습니다. 우선 <천수경>을 독송하고서 참회를 먼저 하기로 마음을 먹고 절을 하루에 500배씩을 한 다음에 <이산혜연 선사 발원문>을 낭독하고서 지장보살 정근을 1만 번 한 다음 회향을 하고서 다시 염불하면서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4시간가량이 소요되는데 처음 1주일은 힘들었지만 묵묵히 참고 하다 보니 이제는 기도가 하루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1일이 채 못 되어 시청 과장으로 근무하는 선배님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마침 괜찮은 회사에서 지역 사람을 모집하는데 발이 넓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추천을 해달라고 해서 저에게 연락을 했던 것입니다.
제가 정당의 사무국장도 맡아 보았고 동문회 일과 사회활동도 좀 했던 터라 선배님께서 기회를 주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력서를 준비해서 다시 선배님을 방문했었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시면서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1주일 정도 지나자 선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약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한 번 회사를 방문해서 상담을 해보라고 하시더군요. 기쁜 마음에 회사로 갔고 거기서 총무이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회사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들은 다음에 언제 쯤 출근이 가능하냐고 물으시기에 그동안 주변 정리도 해야 하니 10일 정도의 시간을 주시면 가능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 그 때 출근하라고 하시면서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속으로 “부처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 가슴 벅찬 기쁨의 눈물이 흐르는 가운데 “저에게 몇 번씩이나 가피를 내려주시고 어려운 때에 살길을 열어주시니 은혜가 백골난망이옵니다. 앞으로 부처님의 크신 은혜에 보답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마음을 먹고서 올렸던 국형사를 찾아서 부처님께 준비해간 초와 향 그리고 과일을 올리고서 절을 드렸습니다.(계속)
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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