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외할머니 불심 영향속 성장
지장보살님 원력에 크게 감동받아
집안에 기도처 마련하고 기도 시작
제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64년 8월경,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천년 고찰 치악산 구룡사에서 10세 때 5계를 받은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재소를 경영했는데 구룡사 앞산에서 산판을 하셨던 관계로 여름방학이 되면 자연스럽게 구룡사에서 한 달 동안 자연을 벗 삼아서 공부도 하고 심신도 단련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은 이어져 갔습니다.
주지스님을 따라서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하는 새벽예불과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하는 저녁예불에 참석해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 저의 몸과 마음은 차차 부처님께로 향했고 어린 마음에도 부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셨던 분은 지금은 작고하고 안 계신 외할머님 김대원경 보살님이었습니다.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영세도 받으셨지만, 불교 집안으로 시집오신 이후에는 시아버님을 따라서 불교를 믿으시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큰외손자다 보니 저를 끔찍이도 귀여워해 주셨고 절에 가시면 항상 큰외손자가 잘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원을 하셨답니다.
저도 그런 외할머님이 고맙고 존경스러워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연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1군사령부 법당 법웅사-청담 큰스님께서 직접 터를 잡아주시고 사명(寺名)도 지어 주심-에서 불교학생회장을 맡으면서 법사님으로부터 <금강경>과 <법구경> 등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초보적인 수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에 입대를 해서는 논산에 있는 수용연대와 광주에 있는 상무대 무각사에서 법사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어렵고 힘든 군 생활을 기도를 통한 불심으로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해 나갔으며, 양평에서는 제대를 하는 1년여 기간 동안에 법당에 나가서 괘도도 직접 제작을 해서 장병들에게 찬불가를 지도하면서 보람있는 군 생활을 잘 마무리 하고 사회로 복귀를 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청년회를 조직해서 불교의 불모지 원주에 부처님의 법음을 전파하는 신심 있는 청년 불자들의 장을 마련하면서 불교성지로서의 면모를 하나하나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가 생기면 유산이 되고 해서 참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이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던 외할머님께서 다니시던 절에서 새로운 법당을 완공하고 부처님도 새로 모시는데 점안식날 부처님 머리에 올렸던 삼베로 된 고깔을 주지스님께 부탁을 해서 하나를 얻으신 다음, 그 자리에서 반바지를 만들어서 부처님 앞에 올렸다가 저의 집으로 가지고 오셔서 제 아내에게 주시며 입으면 효험을 볼 것이니 입으라고 말씀하시고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아내는 종교가 없었고 그다지 신심이 없었던 터라 의아심을 갖고서 선뜻 입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 삼베가 까칠까칠 하니 더욱 입기를 꺼려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권하지도 않았고 때가 되면 입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안생기고 자꾸 유산을 하는데 자신이 생각해도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는지 한번은 저에게 그것을 입어볼까 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들은 얻으려고 해도 얻기가 어려운 것을 외할머님께서 당신을 생각해서 어렵게 구해서 만들어 주셨으니 성의를 봐서라도 입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이후 반신반의 하면서 반바지를 입더니 100일이 채 안되어서 몸에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갔다 오라고 하고서 저도 은근히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병원을 다녀오더니 화색이 도는 얼굴로 임신 2개월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외할머님께 전화를 드려서 소식을 전하고 감사한 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께도 말씀을 드리니 축하한다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맛보는 즐거움이었기에 부처님께 달려가서 절을 올리면서 “부처님 자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훌륭하게 잘 키우겠습니다”하고 다짐을 하고서 돌아왔습니다.
부처님께서 주신 그 귀한 큰아들이 지금은 인제군에 있는 포병부대에서 10개월 째 군복무를 잘하고 있으며 일요일에는 법당에 나가서 착실하게 신행생활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식을 더 낳아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계속해서 유산이 되고나니 전생의 업보인 것 같은 생각에 포기를 하려고 했는데, 제가 장손이다 보니 아내가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하루는 아내가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앞으로 아이를 갖기가 힘들고 또 인공수정을 한다고 해도 확률이 10% 정도 밖에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그래도 아내를 위로하면서 열심히 기도하면 언젠가는 부처님께서 자식을 점지해 주실 거라고 믿고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지장보살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죽은 영가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미륵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무불시대에 교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부촉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성 감동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옥 중생들을 위해서 지옥문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시는데 그 장삼 자락이 마를 날이 없다는 이야기도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일체 중생이 성불하기 전에는 나는 결코 성불을 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지장보살님의 원력에 크게 감동을 받아서 조용한 방에 지장보살님 족자를 모시고 헌다기와 촛대 그리고 향로를 준비해서 지장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성철 스님께서 입적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서 평소에 큰스님을 친견한 적은 없었지만 마지막 가시는 길에 꼭 참석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아내와 큰아들과 함께 밤 9시에 원주를 출발해서 새벽 4시에 해인사에 도착했습니다. 대적광전에 들어서니 전국에서 모여든 불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고 간신히 한쪽 구석에 앉아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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