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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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 수상작/(유마상)-김두만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나에게 아비라 기도는
■당선작 (유마상)-김두만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나에게 아비라 기도는

지금 내 차는 백련암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금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며 백련암을 찾아가고 있다. 세상살이에 끄달리면서도 때가 되면 백련암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부처님 만나기 어렵고, 또한 정법(正法)을 만나기 어렵고, 좋은 도반을 만나기 어렵다 했는데, 지금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나는 이미 사람의 몸을 받았으며 부처님을 만났고, 대한민국 수많은 불제자 가운데서 성철 큰스님에게서 심원(心源)이라는 불명을 받으면서 정법 공부를 했고, 백련암으로 3천배를 하도록 이끌어주신 진여심·대원행 보살님을 만났으니 말이다.
16년 전 여름. 나는 부산 범어사 청련암에서 오만한 나의 탐진치로 잃어버린 재산과 사업의 재기를 원하면서 시커멓게 타는 가슴을 안고, 어설프고 서툴기만 한 모습으로 무턱대고 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시던 중년의 진여심 보살님이 어느 날 나에게 사과 한 조각을 건네주며 다가왔다.
“처사님, 무슨 고민이신지 모르겠지만, 원을 세우고 기도를 하시려면 해인사 백련암이라는 곳에 성철 큰스님이 계시는데, 거기 가셔서 3천배를 하고 친견을 한번 해 보세요.”
당시 나는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솔직히 3천배라는 절의 숫자가 얼른 이해도 되지 않았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내 나름대로 답답하고 간절한 마음에 매일 청련암에 가서 절을 하고 있었고, 무리하게 절을 해서 무릎이 까지고 피가 흘렀다. 그 와중에 처음에는 어설프고 서툴기만 하던 자세가 차츰 모양새가 갖추어져 가고, 절 횟수도 늘려 갈 수 있었으며, 조금씩 심리적인 안정감도 느껴지면서 주변을 돌아보는 작은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 불교서점에 들러 불교관련 서적을 몇 권 씩 사서 보면서 불교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과 열정만이 나를 지배한 채, 그 해 여름이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땀에 절은 옷과 몸을 법당 밖으로 나와 말리면서 자판기의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진여심 보살님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보살님은 범어사에서 100일동안 1000배와 능엄주 30독씩 하는 기도를 오늘 회향하고 가신다면서, 처사님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도반 한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며 커피를 한잔 빼 드리고 법당으로 올라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저분들은 어떤 생각과 간절함으로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법복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을 때까지 절을 할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한참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복잡하던 내 심경으로는 그 의문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고, 오직 나의 뜻한 바대로 내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진여심 보살님이 전화로 “오늘 오후에 시간이 나면 좀 만날 수 있겠느냐”는 말과 함께 “기도는 열심히 하고 있지요?”라고 물었다. 얼떨결에 “예”라는 대답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가니, 대원행 보살님과 내 나이또래의 여륜 거사님이 같이 나와 계셨다.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중 대원행 보살님께서 여륜 거사에게 같이 좀 갔다올 곳이 있다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나 역시 엉거주춤 영문도 모르고 뒤를 따라가니 법복(승복) 맞춤집이었다. 들어서자 대원행 보살님이 손수 잿빛으로 물들인 무명천을 내 놓으며 나를 가리키면서, “저 처사님 법복 좀 맞춰 주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남자가 무슨 법복을 입나?’ 하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남자들이 법복 입은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기에 법복이란 보살님들이 절에 갈 때 입는 옷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순식간에 법복집에서 옷을 맞추고 나오자 여륜 거사는 나에게 말했다. “백련암에 3천배 기도하러 가실 거죠? 저도 갈 거니까 같이 갑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백련암에서는 거사들도 법복을 입어야만 3천배 기도를 할 수 있고, 성철 큰스님을 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복을 찾는 다음날 백련암으로 3천배 기도를 가는 일정이 나도 모르게 잡혀 있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인연이 백련암으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얼떨결에 백련암에 따라 와 3천배 기도를 했는데, 정말 지옥훈련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같이 온 도반님들이야 모두들 오랜 세월동안 3천배를 해 온 경험이 있기에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법당 마루 바닥에 기도하는 좌복을 포함하여 내가 설 수 있는 공간을 동그랗게 그려놓고 그 밖을 나가지 않고서 4시간 안에 3천배를 모두 마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산을 해보니 한 시간에 약 800배 절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물러설 곳 없이 만들어진 상황! 기도 잘하라고 노보살님이 해 주신 법복을 입고, 선배 도반들이 그어준 동그라미 안에서 무조건 해내야 하는 3천배 기도가 드디어 내 인연공덕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몸은 이미 나의 생각을 벗어나서 움직이고, 내 머릿속은 온통 하얗게 변해가면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땀은 그동안 남을 돌아보지 않고 욕심으로만 살아온 세월을 하나하나 벗겨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대략 2700배를 넘어설 무렵부터는 몸의 감각이 하나씩 마비되고, 나는 의지와 생각이 배제된 로봇 같은 무의식의 세계가 되어서 절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나를 지배하고 있던 돈과 명예와 사업, 그리고 온갖 세속의 인연들, 그 모든 것들이 내 몸에서 날아가고 있었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도반들의 원력으로 시작된 3천배 기도가, 절의 횟수가 더해가면서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벗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의 마음은 이 절을 다해서 빨리 3천배가 끝나고 성철 큰스님을 친견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3천배를 하면서도 내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절을 통해 얻어지는 하심(下心)과 인연공덕, 업장소멸이 아니라 오로지 성철 큰스님을 뵙는 것이었다. 스님을 뵙게 되면 “어떻게 하면 다시 사업을 재개하여 잃어버린 내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을까”를 여쭈어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3천배를 마치고 큰스님을 뵙고 난 후 내가 궁금해 한 것들에 대한 답은 하나도 얻을 수가 없었다.
처음 대면한 스님의 느낌은 맑고 투명하고 청량했으며 미소 띤 인자한 얼굴에서 형형한 눈빛이 뿜어져나와 감히 거역할 수 있는 위엄을 느끼게 했다. 또한 오래되긴 했지만 너무나 정갈하고 단정한 옷매무새는 철두철미한 수도승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존경심과 겸손함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었다. 기도 중에 스님께 꼭 물어보리라 다짐했던 얼토당토않던 질문들은 어느새 달아나 버렸다.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스님 얼굴만 쳐다본 채 서 있던 나는 “기도 열심히 하라”는 스님의 한 마디만을 듣고 방을 나왔다.
그러나 스님을 뵙고 받은 충격은 너무나 컸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게 하는 큰스님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청량한 기운은 영혼을 지배해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성철 스님을 뵙고 난 후 나의 가치관을 새롭게 세우게 되었고, 평생을 통해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재정비하게 됐다. 그 첫 번째 수선가 일과기도 정진이었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오고 있다.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께서 지도해 주신 기도법에는 3천배기도 말고 아비라 기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 또한 업장을 소멸하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지금까지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스님을 뵙고 2개월이 지난 후 나는 여륜 거사와 함께 아비라 기도에 참석했다.
당시 거사들은 원통전에서 기도를 했는데, 겨울도 아닌 한 여름에 장작을 쪼개 아궁이에 불을 때가면서 기도를 했다.
처음 하는 아비라 기도에 대한 긴장감이 나를 감쌌고 뜨거운 열기와 연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또한 방바닥의 열기는 너무 뜨거웠다. 나름대로 묘책이랍시고 박스를 구해 2~3장 깐 후 그 위에 덮고 자는 이불도 깔아 두껍게 만들고 그 위에서 기도를 했다.
사시예불과 함께 기도가 시작됐는데, 바닥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속옷은 물론 법복까지 흠뻑 젖었고 장궤합장을 한 다리는 마비되듯이 고통스럽고, 합장한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선배들이 진언을 크게 외치라고 했지만, 아무리 진언을 하고 싶어도 뱃가죽이 당겨 내 의지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기도 시간인 30분은 너무나 길었다. 혹시 시계가 멈춘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시간이 늦게 흘렀다. 제풀에 지쳐 포기 비슷한 감정이 들 때쯤 죽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긴 숨을 토해내고 일어나서 3배를 하면 한 파트 기도가 끝난다.
한 파트 기도가 끝나면 25~3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갖는데 이때 능엄주를 일독한 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능엄주 일독을 하는데도 20분이 넘게 소요되었으니, 휴식을 취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고, 쉬는 시간에 맞춰 능엄주 정독을 하기에도 급급했다.
불현듯 ‘내가 이렇게 힘든 기도를 왜 왔을까’하는 회의감이 들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기도에 정진하고 있는 여륜 거사님에 대한 원망도 일었다. 한 파트 기도가 이럴진데, 나머지 23파트를 어찌 끝낼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예상했던지 알 수 없지만, 자동차 키를 여륜 거사님이 보관하고 있었으니 해인사 백련암을 벗어날 수도 없었다.
또한 당시 백련암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기도온 학생도 있었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도 계셨는데, 젊은 내가 도중에 그만둘 수도 없었다. 솔직히 당시에는 ‘힘들어도 이번만 끝내고 가자, 설마 죽기야 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기도에 임했다.
둘째 날 기도가 시작됐다. 고정된 자세로 지탱하고 있어야 하는 다리는 이미 마비되어 내 다리가 아니었고, 공양도 어떻게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온몸의 마디마디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고 걸음조차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이틀째 기도가 끝났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힘이 들었지만, 저녁이 되니 언제 낮에 땀을 흘렸는지 모를 정도로 땀냄새도 나지 않고 뽀송뽀송한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후 7번째 기도에서 드디어 작은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아프던 몸뚱아리가 갑자기 하나도 아프지 않으며, 기도하는 몸 상태가 아주 편안해졌고, 그렇게 소리 지르고 싶어도 뱃가죽이 당겨 지르지 못했던 법신진언 ‘옴 아비라 훔 캄스바하’가 술술 나오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후의 기도를 거뜬하게 마칠 수 있었다. 기도 끝낸 후 스님은 나에게 ‘심원’이란 법명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불명을 주면서 스님께서는 “니 아비라 기도하면서 3일째까지 욕 많이 했제? 다시는 아비라 기도 안 올라꼬 마음도 먹고. 그래도 니는 심원이 무슨 뜻인고 알제?”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스님은 기도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훤하게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읽고 계셨다는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느껴짐과 동시에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천배에서 시작된 나의 불교인연은 아비라 기도를 만나게 해 주었고, 지금까지도 일년에 네 번 아비라 기도를 하고 매달 3천배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교에 좀더 다가가고 보니, 지금 내 자신의 신행생활이 미흡하다고 생각돼 항상 성철 스님께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더불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도 불교를 만나게 해 줄 수는 없을까도 고민하게 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다.
전 세계를 이어주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이용하면 정말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성철 큰스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좋은 기도법을 빨리 많은 법우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불면석(cafe.daum.net
/bmsuk)’ 카페다. 2005년 4월 13일에 출발한 불면석은 5개월 만에 회원이 270여명을 넘어섰고,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해인사 백련암에 모여 철야 3천배 기도를 한다.
그리고 매달 넷째 주에는 마곡사에서 능엄주 수독 철야기도 일정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더 비중을 두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한달에 두 번씩 모이는 법회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맺어지는 불연(佛緣)이다. 회원들이 카페에 올리는 살아있는 글은 초심자들이 3천배와 아비라 기도 그리고 일과기도 등의 수행을 할 수 있는 발심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3천배가 두려워서 감히 도전해 보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불면석 카페에서 다른 이들이 3천배 원만회향한 후 올린 후기를 보고 발심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분들이 또 다른 초심자를 불교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정말이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기도가피가 아니고 무엇이랴.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설득력이 없다. 힘든 3천배와 아비라 기도를 직접 해보고 나서 확신에 찬 언어로, 주위 법우들을 설득해 해인사 백련암에 데리고 오는 후배도반들을 보는 내 마음은 정말 뿌듯하기만 하다.
성철 큰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신 ‘남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불면석에서는 내 안의 불성을 찾고, 업장소멸의 기회를 만들고자 힘든 결심을 하고 해인사 백련암에 참석한 초심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전체 대중이 아무리 많아도 초심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회원들 모두는 그 한 사람의 3천배 원만회향을 위해 기다려주고 참아주면서 천천히 호흡을 맞추어 주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후배들이 선배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서 불심을 키우고 다져나가기를 바란다. 또한 이것이 불면석의 튼튼한 전통으로 이어져 나가도록 하고 싶다.
불면석 카페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또 한 가지 기도법이 있다. 그것은 생활기도법으로, 역시 성철 스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가 매일 절에 가지 않으면서도 부처님을 하루도 놓지 않고, 내 자신을 굳건하게 만들면서 근기를 만들어 가는 기도법으로, 매일 하는 일과기도가 그것이다.
예전 백련암에서 3천배 기도를 하면 성철 스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불명(佛名)이고, 두 번째는 일원상(一圓相)이고, 세 번째가 ‘삼(參)서근’의 화두이며, 네 번째가 ‘불기자심(不欺自心)’의 수행심이다
그 중 일원상은 액자로 만들어서 집에 걸어놓고, 매일 그 앞에서 참회기도를 한다. 예를 들면 기도를 좀 오래하신 분이나, 특별하게 스님으로부터 숙제를 받게 되면 집에서 절을 하게 되는데, 우리 모두는 일원상 앞에서 기도를 한다.
성철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절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매일 연결되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기복적인 부분이 생길 때만 찾아가게 되는데, 부처님은 그렇게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예불과 참회를 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것이 수행정진이다. 그러니 집에다 일원상을 내 마음의 부처로 걸어놓고 집에서 매일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받아들였고, 또 지금까지 행해왔으며 또 이 부분을 카페를 통해서, 3천배를 통해서, 법우들에게 수행의 지침서로 전해주고 싶다.
죽을 때까지 예불대참회문을 보면서, 매일 세끼 밥 먹는 것과 똑같이 빠짐없이 108배 참회기도를 하고 능엄주를 하는 것이 백련암으로 3천배를 다니는 우리들 수행의 기본이다.
그렇게 정진력에 힘이 붙으면 108배의 숫자를 늘려 300배를 하기도 하고 500배를 하기도 하고 1000배를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능엄주 수독도 하루 1독에서 3독, 7독, 14독으로 늘려나가기도 한다.
부모에게 받은 육신의 몸으로 도를 이루기 위한 좋은 인연을 만났으니, 우리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성철 큰스님의 가르침으로 업장소멸과 ‘참 나’를 찾아가는 정진력을 묵묵히 행할 따름이다.
스님께 받았던 불명도 수행의 큰 지침이 된다. 법명을 받은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심원(心源)이라는 불명 값도 못하지 말고, 기도 열심히 해라”하셨던 성철 큰스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16년 기도 다닌 세월에 내세울 밑천 하나 제대로 없건만, 늘 스님이 주신 ‘삼(參)서근’ 화두를 들고 자신 자신을 속이지 않는 수행심으로 정진해 나갈 따름이다.
또한 나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인연있는 도반 한 분이라도 더 만나진다면 그 분을 위한 3천배를 하고자 할 뿐이다.

제11회 신행수기 수상자
■ 대상(유마상)
김두만 ‘나에게 아비라 기도는’

■ 우수상(현대불교신문사장상)
류영식 ‘사모곡’

■ 특별상(종단협의회장상)
예수해 ‘사경으로 만난 부처님’

■ 특별상(태고종 총무원장상)
류복희 ‘진흙 속의 진주 한 알’

■ 특별상(천태종 총무원장상)
김효학 ‘인생의 고비에서 만난 부처님’

■ 특별상(관음종 총무원장상)
한다현 ‘모든 인연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 특별상(총화종 총무원장상)
김남기 ‘세세생생 지장행자의 길을
가렵니다’

■ 특별상(불교진흥원 이사장상)
조남희 ‘나를 바꾼 부처님법’

■ 특별상(신수회장상)
장진익 ‘군대, 내 마음의 법당’

당선 소감
혹한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연말, 요즈음 나의 일상은 그저 하루하루를 메워가고 있는 무미건조한 생활의 연속이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부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부처님법을 만난 것이 그나마 성공적인 인생이라 생각돼, 죽을 때까지 매일 108 참회기도라도 열심히 해보자고 시작한 생활이 벌써 16년을 맞았다.
아직도 나는 참불자가 되지 못했다. 모범적인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을 찾아다닌 세월이 길다보니 아마도 안타까운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어쩌면 게으르고 탐욕스런 지금의 내 모습을 보다 못한 부처님께서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각성의 채찍질을 해 주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변변히 상 한번 받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또 다른 정진의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대상을 받은 신행수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더 치열하게 정진하고 더욱 더 기도에 동참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본다.
주마등처럼 지나는, 부처님을 만나서 살아온 세월을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두려움때문에 도전하지 못하는 3천배 기도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홍보해 소중한 인연을 쌓아나갈 것이다.

심 사 평
두 차례의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15편이었다. 본심을 거쳐 당선작으로 확정된 9편의 신행수기는 알찬 내용과 깔끔한 문장력을 갖춰 높아진 불자들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 읽는 이로 하여금 신심을 우러나게 했다.
무엇보다 11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불교 신행수기 공모전은 신행형태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1~5회 응모작들이 기복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 반면 이후 신행수기들은 불교적 소양을 갖춘 지성불교를 담아냈다. 올해 작품들은 자기 참회를 바탕으로 한 수행과 실천이 잔잔하게 그려지면서 신행수기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됐음을 보여준다.
김두만씨의 <나에게 아비라 기도는>은 탄탄한 구성과 수려한 문장력 외에 불자들의 신행이 어떻게 나아가야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어 대상(유마상)으로 선정됐다.
우수상(현대불교신문사장상)인 류영식씨의 <사모곡>은 사모의 정이라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소담하게 엮으면서도 신행수기 형식의 틀을 깬 점이 높이 평가됐다. 특별상에 선정된 7편의 작품들에서도 신행활동을 통해 느끼는 고뇌와 이를 뛰어 넘게 해준 신앙고백을 진솔하게 풀어내 신행의 깊이가 느껴진다.

심사위원장 : 법산 스님 (동국대 선학과 교수)
심사위원 : 김징자 (본지 논설위원·칼럼니스트)
최정희 (본지 前 편집국장)
이남숙 (신수회장·조계종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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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