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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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갚으련다/김창섭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3동)
나는 어릴 적부터 무척 불행했다. 어릴 때는 자신이 불행한지 행복한지 판단을 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불행했다. 그리고 건강도 안 좋았다. 특별한 질환은 없다고 나오는데 아픈것은 대부분 정신건강이 제대로 챙겨지지 않았다는 결과이니까.
특히 어머니의 악다구니가 제일 지겨웠다. 나를 사랑한 것 같지만 지금 판단해보면 대부분 어머니 자신을 사랑한 결과였다. 나는 어릴 때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공부를 강요했다. 성적이 좋으면 어머니가 좋아하니까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공부를 했다. 강요에 의해 공부를 하다 보니 약간의 우울증도 겪었다.
외톨이로 그리고 약간의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나는 경북대를 졸업한 후 매일신문 29기 수습기자로 발탁됐고 다시 중앙일보에 24기 대우로 특채됐다. 남이 볼 때는 순조로운, 어떻게 보면 너무나 순탄한 인생길이다. 그러나 정녕 나는 불행했다. 마음속에 진정한 행복감이 없었다.
중앙일보 자매지 중앙경제 교열부에 있으면서 신경정신과 상담치료를 1년 가까이 받았다. 50분 상담에 5만원을 주고 1주일에 한 번 치료를 받았는데 비싼 감이 있었으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정신분석을 받고 무엇이 결핍되었나, 무엇을 보충해야 하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당시 담당의사에게서 “당신같은 스타일이 해고 1순위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해고가 어떤 것인지 정확한 감이 없었고 그렇게 쉽게 해고당하리라고는 상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8년 2월 명예퇴직을 강요당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남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했기에 회사의 처신을 이해할 수 없어 저항을 많이 했다. 도대체 나보다 게으른 사람들은 놔두고 왜 착실한 나를 자른단 말인가! 정말 천부당만부당했다.
그렇게 회사에서 해고되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게 있다. 바로 발표력 기르기다. 당시 무료직업교육을 받으면서 남 앞에서 자기주장을 확실히 밝히는 연습을 나이 40에 시작한 것이다. 1년 가까운 취재기자 시절 온갖 사람을 다 만나고 추궁(?)하고 했지만 아직도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여러 학원에서 사람사귀기와 발표력 기르기를 배웠고 제과제빵학원도 다녔다. 거기서 기술을 배워 취업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얼떨결에 딴 자격증으로 기존의 가게들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노래방을 2년간 운영해봤으나 이것도 실패. 그러다 스포츠투데이에 교열기자로 들어갔다. 물론 내적 갈등은 계속됐다. 내적인 평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천안청소년수련원에서 3박 4일 수행도 참가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찾아왔다. 틱낫한 스님의 <화>라는 책을 대여섯 번 읽고 ‘바로 이것이다’하고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책 표지에 써있는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가슴 속 30~40년 된 감정의 앙금을 찾아 초등학교 동창까지 찾아 나섰다.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 “그때 이러 이러한 폭력으로 나는 그동안 마음의 고통을 당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해도 대부분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 내 속의 화는 그것으로 삭아져 갔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이런 식으로 풀려다 보니 끝이 없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상대가 대화를 거부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것이 내 속의 화를 증폭시켰다. 아무리 화를 풀려고 해도 풀어지지 않고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고 식구들과 얼굴 마주 보기도 힘들었다. 내부의 화 에너지가 너무 강렬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섯 식구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우선 내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다급함이 앞서 퇴사를 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도 순하고 착했던 내가 왜 이렇게 지옥불 한가운데를 걷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무슨 업이 지중하여 이렇게 순탄한 대로를 두고 스스로 지옥불을 껴안지 않으면 안 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원망도 많이 했다.
모든 것이 어머니의 악다구니 탓같았다. 어머니는 당신의 불행을 왜 아이들에게 전가하여 그렇게 아이들을 들볶고 괴롭혔는지 도저히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여파로 나는 지금 이렇게 마음이 혼란스럽고 사람의 기본 인성과 감성이 형성돼 있지 않고 오히려 많이 파괴되다 보니 사람들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해야할 것이 바로 ‘부모님 극복’이다. 남의 잘못은 쉽게 극복되는데 부모님의 잘못은 연약한 자식으로서는 정말 어떻게 해보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나만 해도 처음엔 효도한답시고 어머니의 악다구니를 듣고 있다가, 듣는 내 영혼이 고통스러우면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대번에 ‘불효자’라고 징벌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당신의 불행에 대해서 내가 자리를 피한다고 불효자라고 곤장을 쳐 버리는 어머니가 너무 딱했다. 나처럼, 장남과 장녀가 우울증이나 가정의 어두운 분위기에 희생당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나는 이것이 바로 전생의 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혹독하게 시달릴 짓을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수억겁 과거전생이다. 바로 이 불교의 핵심사상인 전생 업을 동원하지 않으면 나의 불행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바로 이 업을 풀기 위해서 경남 산청 해동선원의 성수 큰스님과 강원도 원주 성불원의 현각 스님 그리고 틱낫한 스님의 책과 정목 스님의 가르침을 잘 따라가고 있다.
이 분들의 자비한 가르침에 의해 나의 어두웠던 과거가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오로지 불행으로만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바로 그 악다구니가 오히려 내 인생의 폭을 넓히게 해 주었다. 전생에 대한 개념도 잡고 또 인간이 재주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 또 빠르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교훈도 얻었다.
그리고 지금 두 분의 불빛이 나를 이끈다. 하나는 성수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지는 것도 해탈이다.”
두 번째는 온몸이 부서져라 방송치료를 하고 계시는 정목 스님이다.
이 두 분의 뼈저린 사랑에 반드시 나의 어두움을 낱낱이 밝혀서 나보다 더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덥혀주는 게 내 인생의 목표다. 받은 사랑에 반드시 이자를 붙여 이 사회에 환원하리라 다짐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신행수기 일년내내 받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속에만 꼭꼭 담아두었던 감동깊은 신행체험들을 진솔하게 적어 보내주십시오. 연중 접수한 신행수기 가운데 우수작은 소정의 고료를 드리고 신문에 연재하며, 연말에 최종 심사를 거쳐 시상합니다.

● 주제: 신행 및 수행 체험, 불심으로 고난을 이겨낸 이야기
● 분량: 200자 원고지 30매 안팎(A4용지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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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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