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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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법당 (하)/장진익 (전북 부안군 계화면)
나를 불교로 이끌어 준 서 병장이 제대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니 ‘내가 이렇게 이기주의자였나?’라는 자책이 들었다. 서 병장으로 인해 군종병이 되었고, 군종병이라는 특혜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부대원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그들에게 위로와 정신적 휴식처를 제공해주라는 것임에도 나는 나의 안락에만 빠져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행정반에서 서 병장의 연락처를 받아 그에게 전화했지만 결번이었다.
법당을 쓸고 닦고 법사님을 잘 모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힘든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전우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나의 우선적인 임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을까? 나의 머리 속엔 온통 그 화두로 가득 찼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밥이야 밥!”
군대 밥이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어찌 어머니가 정성껏 해주신 밥에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법사님의 허락을 받고 일요 법회가 끝나면 법당을 찾은 전우들에게 손수 공양을 올리겠다고 청했다.
“쌀이며 반찬은 한정돼 있는데 어디서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려고 하냐?”고 법사님이 물었지만 “다 생각이 있으니 맡겨 달라”고 말씀드렸다.
군 입대 전 나는 과외를 비롯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푼푼이 모아 둔 적금이 있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전우들을 위해서 마음을 내기로 결심했다.
요리를 잘 하진 못하지만 전우들의 입맛에 맞게 햄과 소시지 등 기름기 있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해 일요 법회가 끝난 후 공양했다. 또한 평일 제초작업을 하는 전우들에게는 가끔씩 라면을 끓여 간식으로 대접했다.
비록 큰 선행은 아니었지만 이런 나의 공양은 입소문을 타고 중대에 퍼지면서 일요일마다 법당을 찾는 전우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준비해야 할 밥그릇이 하나씩 늘어날 때 마다 내 마음의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그릇도 하나씩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법회를 이끄는 법사님도 흡족해 하는 눈치였다.
전우들은 일요일뿐 아니라 평일 근무가 끝나면 법당이 마치 내무반인양 편하게 들렀다. 가끔은 내가 상담사 역할도 해야 했다. 여자친구 문제, 진로문제 등 상담거리도 다양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형처럼 의지하고 따랐던 서 병장이다. 서 병장으로 인해 군대에서 정신적 안정은 물론 마음의 평안도 찾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 탈없이 전역하고 나자 다른 시련이 다가왔다. 혈소판감소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에 걸린 것이다.
일반인들은 혈소판의 수치가 15만개에서 40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는 신체의 충격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피의 한 구성요소다. 이러한 혈소판수치가 부족해지면 작은 부딪침에도 시퍼렇게 멍이 든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속이 쓰려 무슨 문제가 있나 하고 병원을 찾았는데 혈액검사를 통해 혈소판감소증이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검사결과 나의 혈소판의 수치는 8만개였다. 한 달 후에 다시 검사 받으니 5만5천여 개로 더 떨어졌다. 혈소판의 수치가 2만개 이하로 떨어지면 코피를 쏟고 온몸에 멍이 든다고 했다.
대학교에 복학한지 몇 달 되지 않아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니 나의 삶은 혼란스러워졌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법당을 찾았다. 대학생불교연합회 동아리방을 찾아 매일 108배를 올렸다.
그것은 어떤 대상을 위한 절이 아니었다. 단지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밤 10시. 어두운 밤에 홀로 촛불을 켜놓고 정근을 했다. 지독한 감기까지 걸려서인지 108배를 올릴 때마다 숨이 찼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좌선까지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나의 노력을 부처님이 아셨을까? 나를 괴롭혔던 몸살감기는 씻은 듯 사라졌다. 얼마 후 다시 혈소판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도 매우 좋았다. 혈소판의 수치가 9만개로 늘었다는 것이다. 한 달 후 다시 검사를 받았더니 혈소판 수치가 9만5천개로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담당 의사님은 혈소판의 수치가 점차로 감소했다면 혈소판감소증으로 골수검사까지 할 뻔했다고 말했다.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또 한 번의 어려움을 이렇게 겪은 후에 나의 생활은 더욱 활기로 가득 찼다. 어려움을 이기기 위한 노력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갖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한 의지로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활기찬 삶을 살게 된 것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지금 나는 취업준비생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다. 취업전선이 초비상이라고 뉴스나 신문에서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고통도 극복해낼 수 있는 자신감과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쓸쓸한 가을이 오고 온몸이 시리도록 추운 겨울이 와도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날 반겨줄 따스한 봄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함께하는 나의 삶은 언제나 행복할 것이다.
이제 군대를 제대 한지 3년째. 문득 문득 군종병 시절을 떠올려 본다. 마음의 위안과 안정을 찾기 위해 법당을 찾았던 나.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할 때는 종교를 찾지 않다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종교를 찾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또 부처님을 찾고 하느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남을 위해 기도하고 절을 찾고 교회를 찾기보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종교를 의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군종병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법당 안의 부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면 내 소원과 우리 가족의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처님은 법당에도 계시지만 내 마음 속에 계시는 부처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끝)
200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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