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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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비에서 만난 부처님 (하)/김효학 (전북 익산시 신룡동)
대불련 가입후 봉사·신행 활동에 전념
군시절 입원, 기도의 소중함 알게 돼
‘주경야독’ 생활속 긍정적인 미래 확신

1996년 11월로 기억한다. 여느 때처럼 청년회 저녁법회를 마치고 우리는 강원도 월정사로 사찰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밤에 떠나는 사찰순례였지만 그만의 독특한 멋이 있었다.
강원도라 그런지 그날따라 눈이 많이 왔다. 캄캄한 밤중에 도착하게 됐는데, 눈이 많이 쌓여서 차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손전등 불에 의지하고 한 시간 가량 걸어서 산을 오르게 되었다.
적멸보궁에 오르기 전에 우리는 작은 암자에서 잠시 수면을 취하고 새벽3시에 다시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한참 예불을 보는데 어찌나 졸음이 오던지 서서 예불을 모시면서도 나도 모르게 무릎이 저절로 굽혀지곤 했다. 그러나 그 졸음 가운데서도 산사의 멋은 내게 깊은 감동을 줬다.
눈 내리는 조용한 새벽에 부처님과 자연과 내가 하나가 돼서 드리는 기도.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평온했다.
지금도 감사히 여기는 것이지만 봉은사 청년회와의 만남은 부처님과 법우들과의 인연을 맺어준 잊을 수 없는 생의 사건이었다.
이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에 가입 했고, 그 위에서 새로운 시작을 했다. 술 한잔에 삶과 인생을 풀어놓는 날도 적지 않은 탓에 우스개 소리로 ‘주(酒)불련’이라 부르기도 한 우리네 모임이었지만, 그래도 학생이란 순수함과 열정이 살아있는 수련과 포교의 공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불련 시절 시각장애인들의 가을 단풍구경 행사에 참여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행사에서 이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었다. 그들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 아닌 것으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의 손을 잡아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명씩 팔짱을 끼고 안내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안내를 맡은 시각장애인이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라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가까운 계단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눈을 가진 나는 단풍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고사하고 세상을 훤히 볼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할 줄 몰랐다. 또 이렇게 밝은 세상이 있음을 고마워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겼을 뿐이었다.
항상 더 많은 것을 탐하는 헛된 욕망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가슴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참된 눈을 가진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도 나는 항상 부처님과 함께 했었다. 신교대 때는 통일을 염원하는 108개로 만든 우리나라 지도의 촛불 하나에 불을 밝히는 기회를 갖게 됐고, 자대에 배치받아서도 주말마다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연등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심한 병을 앓게 됐다. 일병 때였는데 감기증상이 오래 지속되더니 몸이 부어오르고 숨이 가쁘더니 며칠이 지난 후에는 의식까지 흐려지게 돼서 군병원에 진찰을 받으러 갔다. 급성사구체신염이란 병명이었는데 당일 바로 입원을 하라는 것이었다. 한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는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지는 ‘군인’하면 어디한곳 아프지도 않고 모두 건강하게 전역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처음 알게 된 것이지만 군인들중 이렇게 많은 환자가 있는 줄을 몰랐다. 건강한 몸으로 전역하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군대에서 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많이 걱정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형제들에게만 알리고 어머니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치료와 더불어 기도라고 생각했다. 기도를 병행하며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전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병원에는 호국사라는 절이 있어 하루에 한번씩 들러 기도를 했다. 한번 호되게 아프거나 입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겸손을 배우게 되며 깨달음의 길을 닦을 기회도 얻는 것 같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입원한지 세달 만에 건강이 원상태로 회복되어 다시 자대로 복귀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의가사제대를 선택할 것인지 계속 병원에 머물러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었지만, 자대 복귀가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을 했다.
다시 자대로 복귀하여 건강하게 만기제대를 할 수 있게 된 것에는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대학시절 나는 4년 동안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승으로 모시는 스님이 계셨다. 내가 졸업하던 해, 스님께서 7일기도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나는 스님과 얘기를 나누고 3일 기도를 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하루 세 번 1080배 기도. 처음은 겁이 났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첫날 아침기도 때에는 힘들기는 했지만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더 이상 무릎이 굽혀지질 않는 것이었다. 물론 의식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고통스럽다는 사실은 몸이 먼저 느끼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시고는 스님께서도 동참하시곤 했는데 스님과 호흡을 맞춰 절을 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스님과 나를 도반이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도반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였다.
3일간의 기도를 무사히 마치고 회향을 하게 되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내리라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극기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그때 회향 선물로 받은 108염주를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 108염주는 지금도 내 수행의 도구로 여전히 내 마음을 이끌고 있다.
그 동안의 내 삶과 불교를 돌이켜 보면, 결과적으로 내가 고통과 시련에 빠져 있을 때마다 깨우치는 스승이었으며 또한 삶의 지침이었다. 그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수험생 신분으로 공부를 한다. 나름대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지만, 고등학교 이후에 나를 세운 불교가 나를 탄탄히 다잡고 있다. 내가 지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 하면 그 정성만큼 긍정적인 미래가 찾아오게 될 것을 믿는다. 앞으로도 항상 감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인생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끝)
200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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