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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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비에서 만난 부처님 (상)/김효학 (전북 익산시 신룡동)
고등학교시절 자취를 할 때였다. 산과 가까이에 있는 숙소에는 새벽마다 어김없이 맑은 풍경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내가 느낀 불교의 시작이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하루는 시간을 내어 산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사찰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일주문이 무엇이고 대웅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절에 찾아든 나를 불량한 손님으로나 여기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처음 찾는 사찰이었지만 나의 마음은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그 이후로 공부가 잘 되지 않거나 마음이 갑갑할 때는 그 사찰을 찾았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사찰은 가끔씩 들러 마음을 달래곤 하는 나만의 장소가 됐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시는 노보살님으로부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웅전에 들어가서 기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게 풍경소리를 들으며, 사찰의 고즈넉함에 긴장과 불안을 놓으며 나는 입시를 치렀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나는 재수를 결심하고 상경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환경과의 차이 때문인지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입시공부에 박차를 가하고자 서울로 오게 됐지만, 막상 나에게 닥친 환경은 생각하는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정신까지 나약해지게 만들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라고나 할까, 눈은 점점 높아지는데 내 여건은 그것과 점점 멀어져 갔다. 욕심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갔고, 불안은 그와 함께 나날이 깊어져 갔다.
그렇게 한해가 흘렀을까. 이듬해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진 것이다. 타지에서 욕심과 불안감에 안절부절할 때에도 그 존재감만으로 마음을 넉넉하게 했던 아버지. 핏줄의 죽음은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 가족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빨리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할아버지 할머니와 오순도순 지내는 일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어려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본 기억이 없었기에 내 바람은 더 컸다. 이마저도 나의 욕심이었다고 한단 말인가.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타지에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보낸 날이 얼마였던가. 나는 고인을 가슴에 담으며 생과 사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결국은 생사의 얽힌 사슬을 푸는 종교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 나는 불교와 다시 마주하게 됐다.
혼자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 속에서 불교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휴일 관악산에 있는 연주암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연주암에는 특정한 불교모임이 없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그곳의 어떤 분께서 여기는 산이 높아서 일반 불자들의 모임은 없으니 대신 시내에 봉은사라는 사찰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 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곳을 찾아 청년회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대불련에 가입해야 할 나이었으나, 직업이 없는 일명 ‘백수’라는 신분에 열등감을 느껴서인지 청년회가 좋을 듯 싶었다.
토요일 오후 6시. 청년회 모임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다. 지하철 삼성역에서 내려 봉은사로 가는 몇 분 동안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충동적인 유혹의 소리가 내면에 울려퍼졌고, 또 한쪽에서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희망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치고 있었다. 그 두 마음 사이에서 퍽도 많이 갈등을 했다.
그러나 만약 그때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렸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너무 궁금한 부분이다.
법회시간인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선남선녀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러 법우들과 예불과 법회를 처음으로 함께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절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었다. 다들 너무나 당연하게 의식을 치러내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헤매자니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넓은 법당 앞쪽에 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다들 목탁소리에 일제히 절을 하고 또 일어서는 것을 반복했다. 그날 예불문을 어떻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예불을 모시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나를 맞추느라 한참을 헤맸다.
<천수경> 독송 때는 경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를 독경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쫓느라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소리를 쫓아 그 소리를 입과 귀에 가슴에 담기 시작하니 가슴에서 묘한 감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리도 아름다운 소리를 왜 이제야 알게 된걸까. 백지의 머리와 가슴으로 접한 경전은 내 가슴에 환희심을 심었다. 지금 봉은사 청년회의 첫 법회를 생각하면 그 때의 첫 마음이 다시 되살아나곤 한다.
나는 청년회 활동을 하며 봉사도 배웠다. 청년회 활동 중에 격주로 봉사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대부도에 있는 둥지청소년의 집에 갔던 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와 헤어져 외로운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 그들과의 첫 만남은 어색했지만, 함께 청소도 하고 목욕도 시키고 농구도 하고 그리고 오후에는 바닷가에서 조개도 잡고 하는 사이에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은 더욱 애틋해졌다.
그렇게 만난지 오래된 사람처럼 가까워져서는, 헤어질 땐 그곳에 남는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그리고 올 때는 게임프로그램도 사가지고 오겠다고 정순창이란 어린 법우(지금쯤 고등학생이 되어 있을것이다)에게 약속을 했는데,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것에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다.(계속)
200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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