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 4.25 (음)
> 종합 > 기사보기
나를 바꾼 부처님법 (하)/조남희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미얀마 선원서 정진 후 불심 더욱 강해져
‘알아차림’ 통해 관용 보시 봉사의 마음 생겨

스승님께서는 매년 미얀마에 갈 때마다 비구계를 받고 수행하신다. 비구계를 받은 스승님과 한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하나의 감동이다.
쉐우민 선원은 새벽 4시부터 예불을 시작하고 밤 9시까지 수행하도록 시간표가 짜여져 있다. 수행처에서 하는 일은 간단하다. 자기 몸 하나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밥 먹고, 몸을 씻고 자기 빨래를 조금하고 나머지 시간동안은 수행에 정진할 수 있기에, 집에서 늘 가족들 밥을 챙기던 평범한 주부인 나는 해방감마저 느꼈다.
미얀마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이지만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무상으로 밥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처음에는 밥을 먹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없었는데 스님들의 탁발을 따라가 보고 나서야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스님들께서 탁발해 오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밥은 선원 근처의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스님들께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올린 것이었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밥이 어떤 인연으로 온 것인가를 알게 되자 밥 먹는 일에 대해서도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미얀마 사람들이 스님들께 가지는 존경심은 2500년 전의 부처님 당시를 보는 것 같아 저절로 신심이 났다.
스님들이 탁발해 오시고 우리는 밥을 받아 먹으며 수행만 하면 되는데 탁발해 오시는 스님들께 미안해서라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다.
좋은 스승님을 만난 인연으로 그렇게 쉐우민 선원에서 수행하고, 미얀마의 여러 불교유산을 보고 마하시선원의 우 자띨라 스님, 우 와사와 스님, 승가대학장 스님, 쒜이진 따옹 절의 주지스님 등 큰스님들을 친견하고나니 돌아올 때 즈음에는 불법에 대한 믿음이 훌쩍 자라나 있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접했을 때는 법문을 들어도 그것을 실 수행에 적용시키기 어려웠다. 40여년의 세월동안 가져온 고정관념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바라고 없애려는 삶을 살아왔기에 바라지 않고 없애려고 하지 않아야 하는 이 위빠사나 수행이 몸과 마음에 잘 적응 되지 않았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수행하는데, 오히려 수행이 되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괴로움으로 다가 왔을 때의 막막함이란….
온통 욕심내고 성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뒤범벅인 내 마음을 보니 너무나 괴롭고 보기 싫어 외면하기도 했다.
일상에서도 알아차림을 하다 보니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를 하지 않게 되어 어찌 보면 냉정해지는 것 같아 두려워지기도 했다. 경행할 때 발의 움직임을 보고 걷고 있을 때, 좌선 중에 배의 일어남 꺼짐을 보면서 ‘이게 뭐하는 건가’ 하고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들은 수행이 안 되는 게 아니고 의식이 고양되어 지혜가 생기는 과정임을 이제는 안다.
수행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의 척도는 얼마나 ‘화를 안내는 지’로 알 수 있다. 화내는 것은 욕심내고 성내는 불선한 마음의 대표선수 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화내는 것’을 제어할 수 있다면 수행이 잘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화가 나면 우선 화내는 마음을 본다. 화내는 마음이 너무 커서 마음을 보기 어려우면 화가 일으킨 몸의 느낌을 보기 위해 가슴을 관찰한다. 가슴으로 의식을 집중하면 쿵쿵거리거나 콩닥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지켜보는 동안 화의 느낌이 옅어지거나 없어진다. 이렇게 화의 느낌을 지켜보게 됨으로써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불선업을 짓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첫 번째로 ‘화를 적게 낸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항상 내가 옳다는 생각 때문에 남편, 자식,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화를 내면서도 내가 화내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런데 이 수행을 배우고 나서 어느 정도 화내는 것을 제어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이제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어머님과 20여년이 넘게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님은 나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다. 예를 들자면 어머님은 연세가 칠십이 넘었어도 지나칠 정도로 외모를 가꾸시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데도 동남아, 중국, 유럽, 호주, 동유럽 등 해외 나들이를 수차례 하셨다.
당신이 하시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하시는 분이다. 나는 그런 어머님이 싫었다. 나의 싫어하는 마음의 파장이 어머님께 미치니 어머님도 나를 싫어하셨다. 남편은 맏아들이고, 맏아들인 것을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이 행동하는 효자이므로 어머님과 나는 떨어져 살 수 없는 데도 매일 미워하며 불선업을 쌓았다.
그런데 이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상대방의 축적된 성향은 바꿀 수 없다는 법문을 듣고, 내 몸과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을 수행을 통해 하나 하나 깨달아 가게 되니 어머님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의 마음이 생겨났다.
그런 내 마음의 선한 파장이 어머님께도 전달이 되어 지금은 어머님도 나를 편하게 대해 주신다. 내가 변하니 남도 변한 것이다.
세 번째로는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점이다.
불법을 알기 전에도 나는 전생이 있고 윤회가 있음을 믿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나의 삶에 대한 책임회피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내 삶의 어렵고 힘든 부분을 사주팔자 탓으로 돌렸는데 그 사주팔자는 다 내가 어느 생에선가 지어 놓은 결과라는 것을 배우고 믿게 되었다.
남의 부모와 비교했던 내 부모, 내 주위의 인연 지워진 것들, 그리고 못난 내 자신까지도 내가 지은 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사주팔자를 바꾸는 단 하나의 방법은 과거에 지어 놓은 행위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림으로써 선한 마음을 내는 것뿐이다.
수행을 통하여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그 편안해진 마음을 통해 저절로 관용의 마음이 생기며 보시하려는 마음,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생긴다. 일상생활에서도 알아차림이 이어져 불선한 마음이 생기면 빨리 알아차린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것이 불선업을 막는 가장 적극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정법만나기 어려우며, 좋은 스승 만나기 어려운데 이 어려운 것을 이번 생에 만났으니 오직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려 정진할 뿐이다.
이번 생에서 안 되면 다음 생, 다음 생에 이어지도록….
늘 자비로운 마음으로 정법을 펴시는 나의 스승 묘원 법사님께 지면을 빌어 감사인사 드리며 삼배 올린다. (끝)
2005-07-06
 
 
   
   
2026. 6.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